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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l 23. 2021

경차를 호텔 발레파킹 맡기려다가 들은 말



나는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 요즘은 아기 엄마들도 남의 집 차가 뭔지 다 아는 세상인데 나는 방금 탔던 자동차의 차종은커녕 색깔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로 차 주인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구는 이런 나를 '순수하다'라고 극찬해줬지만 이건 순수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관심이 없는 거다.



나 사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날 보는 시선이다. 나는 15년 넘은 낡은 차를 몰고 다닌다. 당연히 아무렇지 않으니까 내 아이를 태우고 안 다니는 데 없이 다 다니고, 아이 친구들도 수시로 태운다. 그런데 그 차를 몰고 유치원 설명회에 갔다가 좀 놀란 적이 있었다.



"밖에 학부모님들 타고 오신 외제차들 보셨죠? 여기가 이런 곳이에요."



원장이 유치원의 장점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놓고 그런 걸 유치원의 장점으로 부각하는 원장도 황당했지만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더 충격이었다. 나는 그때 새삼 깨달았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남들도 괜찮게 보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날 유치원에서 나오면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하기 전 경차를 몰고 호텔에 갔다가 겪었던 황당한 사건이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후 처음엔 부모님이 번갈아 가면서 아빠 차로 도로 연수를 시켜주셨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벙벙한 운전 솜씨를 지닌 딸을 도저히 도로로 내보낼 수 없으셨던지 여러 번의 심각한 가족회의 끝에 경차를 한 대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빠 차는 초보 운전자인 내가 몰기엔 너무 커서 긁힐 위험, 주차 못할 위험, 차선을 걸치고 운전할 위험 등등 각종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아담한 경차는 사이즈도 주행감도 딱 좋았다. 최대 난관인 주차도 만사 오케이였다. 좁은 자리에 끼워 넣는 것도 가능했다. 경차가 생기면서부터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처음엔 동네 한 바퀴도 벌벌 떨면서 돌다가 점점 나가는 범위가 넓어지고, 사고라도 날까 봐 아무도 못 태우다가 나중엔 동네방네 친구들 다 불러서 드라이브까지 나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늘었다. 대부분 주차하다가 감이 없어서 나무나 옆 기둥에 스친 자국들이었다. 나의 경차는 몇 달만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 고급 호텔에서 가족 모임이 잡혔다. 나는 다른 곳에 들렀다가 가느라 내 상처투성이 경차를 몰고 호텔에 도착했다. 원래 발레파킹을 맡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시간이 늦어 어쩔 수 없이 발레파킹 구역으로 들어갔다. 보통 호텔 발레파킹 구역에 차가 들어오면 담당 직원이 나와서 차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키를 맡기고 우아하게 약속 장소로 들어가면 주차 끝이다. 그런데 아무리 서 있어도 앞뒤 차만 열어주고 내 차문은 아무도 열지 않았다. 결국 운전석에서 내려서 물어봐야 했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내 차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직원이 그제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냥 지나가는 차인 줄 알았습니다."



황당했지만 약속 시간에 늦어서 급하게 키를 맡기고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어른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친척 한 분은 경차는 호텔 발레파킹에 어울리지 않는 차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셨다. 그날 집에 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경차가 왜 호텔 발레파킹에 안 어울릴까? 그냥 해주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맡기는 건데? 발레파킹은 '주차 대행'이지, '고급 자동차 전용 주차 대행'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그 직원의 웃음이 황당하다는 의미였었나?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서 내려와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니 담당 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호텔 앞을 지나갈 일이 생기면 발레파킹 구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들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과연 경차는 정말 없는지 궁금하다. 호텔 발레파킹에 어울리는 자동차가 따로 있을 리 없다. 내가 좀 덜 순진했으면 그때 그 직원에게 한 방 먹였을 텐데.



"그냥 지나가는 차라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요? 경차라서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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