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에는 듣자마자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계모가 그 중 하나인데 대부분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을 통해 못된 계모를 보며 자랐다.
같은 엄마 입장에서 내가 낳지도 않은 자식을 키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인정한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새끼도 힘들어서 야단치고, 구박하고, 때로는 때리기도! 하는 것이 인간 아닌가. 오히려 계모는 계모이기 때문에 엄마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들조차 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아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 이해되는 수준을 넘어서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못된 계모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악행들이 끊이지 않고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서 계모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킨다. 동화, 영화, 소설뿐 아니라 현실 속 계모들을 보면서 계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주로 어린 자식들에게 집중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통념을 깨는 계모가 있었으니, 바로 스물이 넘은 머리가 다 큰 자식을 구박하는 여자였다.
학교 후배 D는 고등학교 때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곧잘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10대의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으로 갈 만큼 선진 학문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학은 부모님의 권유였다고 한다. D는 미국에 도착해서 얼마 후 부모님이 자신을 급하게 유학 보낸 이유를 알게 됐다. D보다 1년 먼저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누나를 통해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D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대를 마치고 취직하는 동안 아버지는 재혼했다. 아버지가 재혼한 계모는 D 또래의 자기 자식 둘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친어머니 집은 다 큰 아들이 같이 살기엔 너무 좁았고 그렇다고 독립할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던 D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간 첫날, 계모는 D에게 방 하나를 내주었다. 자식 둘이 하나씩 쓰고 있던 방을 하나로 합치고 방 하나를 비워준 것이다. 내심 더즐리 집안에서 구박받던 해리포터처럼 살까 봐 걱정이었던 D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려와 달리 계모에 대한 첫인상은 당연히 좋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모의 친절은 그걸로 끝이었다. 방을 줬다고 해서 마음까지 준 건 아니었다. 남처럼 변해버린 아버지와 침입자 쳐다보듯 불쾌한 시선을 던지며 말 한마디 시키지 않는 의붓 형제들을 대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사람은 계모였다. 특별히 구박하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게 D를 미치게 만들었다. 남들 눈엔 딱히 구박을 하는 건 아닌데 당사자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그게 계모의 능력이었다.
계모는 D가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이 집의 식사 규칙'에 대해서 설명했다. 첫째, 저녁을 먹고 들어올 건지 아침에 나갈 때 반드시 알려줄 것. 둘째,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 먹을 것. 이 두 가지였다.
얼핏 들으면 별 규칙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D는 이 규칙 때문에 계모와 사는 1년 동안 저녁마다 배가 고파도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지 못했고, 반대로 배가 터져도 밥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일단 직장 다니는 20대 아들이 매일 저녁을 먹고 간다, 안 먹고 간다를 출근 전에 정하고 나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회사에선 초년생이라 자기 마음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 없었고, 아무 약속이 없어서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도 갑자기 약속이 생기기 일쑤인 청춘이었다.
그래도 말하라니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없는 날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회식이 잡혔고당연히 후닥닥 계모에게 전화해서 알렸고저녁에 술 한 잔을 걸치고 밤 12시가 다 돼서 귀가했다. 그런데 계모는 그때까지 차려놓은 저녁상을 치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 먹으라고 차려 놓은 거니까 네가 다 먹어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까 회식 있다고 전화드리지 않았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계모는 두 번 권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밥과 국, 반찬들을 D가 보는 앞에서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도 쾅쾅 소리가 나게.
이런 일은 D가 저녁을 집에서 먹겠다고 하고 밖에서 먹고 들어올 때마다 일어났다. 계모가 차려놓은 저녁상은 매번 진수성찬이었다. D는 그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처넣어지는 광경을 형벌처럼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약속이 없는 날도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말하고 출근했다. 그리고 같이 밥 먹어줄 사람을 찾아 휴대폰을 뒤적였고, 끝까지 약속을 잡지 못한 날은 혼자 편의점에서 서서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귀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말하고 어쩌다 보니 안 먹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회사에 일이 밀려 저녁 대신 간단히 떡볶이를 시켜 먹고 야근을 하고 들어온 터라 무척 배가 고팠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고 김치를 꺼내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계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뭐 하니?"
"아, 저녁을 못 먹어서요."
"먹고 들어온다며? 그래서 네 밥은 없는데."
"괜찮아요. 라면 끓여 먹으면 돼요."
계모는 D 앞으로 다가와 D가 열어놓은 냉장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네 밥은 없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D는 정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설마 먹지 말란 뜻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네 밥은 없는데 네가 들어와서 밥을 찾으면 내가 아버지한테 뭐가 되겠니. 아버지 보시기 전에 얼른 들어가."
계모는 나라 지키는 독립군처럼 철통 같이 냉장고 앞을 막아섰다. 그 서늘한 모습에 D는 그간 쌓였던 울분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걸 느꼈다.
"오늘 야근이 있어서 저녁을 먹을 줄 알았는데 일이 밀려서 식사를 제대로 못했어요. 차려 달라는 것도 아닌데 제가 꺼내 먹는 것도 안 되나요?"
"응, 안 돼. 그럴 거면 집에 와서 먹는다고 말했어야지."
결국 D는 그날 밤 주린 배를 안고 잠을 청해야 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그 밤, 부엌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냉장고의 우웅- 기계음을 들으며 D는 어떻게든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스트레스보다 저녁에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해야 할는지 안 먹는다고 해야 할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극심했다. 집에서 나갈 때까지 절대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작심한 D는 밥을 집에서 먹는다고 말하고 밥을 먹고 들어온 날이면 배가 터져도 계모가 보는 앞에서 듬뿍 담은 밥과 반찬, 국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갑자기 약속이 생긴 날이면 친구에게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급하게 일어났다. 급한 일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D가 던진 대답.
"어, 나 집에 가서 밥 먹어야 되거든."
결국 D는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면서 1년 만에 계모의 '딱 계모스러운' 식사 규칙에서 벗어났다. 어머니가 차려 준 밥상을 받은 D는 그동안 너무나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나 지금 배 부른데 남겨도 돼요?"
"그럼, 엄마가 랲 씌워 놓을 테니까 내일 와서 데워 먹어."
너무나 당연한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럽던지. D는 그날 눈물과 콧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인간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D의 계모는 대놓고 구박하는 사람보다 훨씬 악랄하다. 인간의 존엄과 연결된 부분을 집요하고 교묘하게 건드렸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