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창가 Sep 02. 2021

9살에도 죽고 10살에도 죽고 그게 죽음이다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드라마 <도깨비> 中 저승사자



지은탁은 원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도깨비의 도움으로 엄마는 목숨을 건졌고 딸을 낳았다. 저승사자는 0세로 명부에 올라왔던 이름 없는 망자를 찾지 못했고 그대로 그녀는 기타 누락자라 불리우며 저승사자가 열심히 찾는 대상이 됐다.



열아홉 살에 다시 저승사자와 마주친 지은탁은 억울해서 외친다.



"제가 왜 죽어야 해요? 저 아직 열아홉살 밖에 안 됐다고요!"



그러자 저승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홉 살에도 죽고 열 살에도 죽는다. 그게 죽음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음을 이토록 명쾌하게 설명한 걸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거쳐가는 '망자의 찻집'



드라마 <도깨비>는 멜로 드라마로 사랑 이야기지만 저변에 깔린 정서는 죽음이다. 남자 주인공은 둘 다 죽은 자고, 여자 주인공은 살아있지만 죽은 귀신을 보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산 자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망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이 반복된다.



남의 죽음이지만 한 사람이 죽어서 망자의 찻집으로 갈 때마다 나는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렸다.  전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사람들. 응급 환자를 살리고 과로사로 죽은 의사,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모녀, 남편에게 살해당한 아내, 고시원에서 목숨을 끊은 고시생, 화재로 불타 죽은 여고생 등 다양한 죽음이 나온다. 어느 죽음 하나 하찮지 않고 어느 망자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수백 년 동안 매일 보아온 죽음에 둔감할 법한 저승사자도 명부를 받아들면 망설이게 되는 죽음이 있다. 바로 어린아이의 죽음이다. 저승사자가 받는 명부엔 망자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저승사자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처벌이라는 걸 강하게 느낀다. 전생에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저승사자로 환생한다는 데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길래 이런 어린아이를 데려가는 일을 맡았을까, 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 中 아픈 아이를 쓰다듬는 삼신할매



나는 과거에 어린아이가 죽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한밤중 병동에 코드블루가 울리고 곧이어 의료진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5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서 코드블루의 대상이 된 환아의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 아이는 며칠 전 담당 의사에게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였다. 영영 오지 않았으면 했던 순간이 기어코 다가온 그때, 그 어디서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아이가 편하게 떠나기만을,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도깨비>에서 삼신할매는 아픈 아이를 찾아가 "이제 그만 아프자. 그동안 많이 아팠어"라면서 편안히 눈을 감겨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죽음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꼈던 그때를. 저렇게 어린 아이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던 그날, 나는 죽음을 강렬히 받아들였다. 어린이의 죽음은 어른의 그것과는 다르다.  어린이의 죽음은 죽음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알려준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아무 이유 없이 닥칠 수 있는 것, 죽음은 바로 그런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