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소나기>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은 지 꽤 오래다.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나 보다. 엄마와 사랑은 뭐랄까,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는 별개의 존재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엄마도 예전엔 사랑에 빠진 여자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구상하면서부터 내 사랑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젠 노력을 해야 그나마 사랑의 실체가 어렴풋이 잡힐 기미라도 보인다는 게 쓸쓸하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읽고 지나간 멜로 영화도 괜히 뒤적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는 줄거리를 파악한 것 외에 가슴을 건드리는 감정은 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번 주말 비 예보가 있다는 뉴스를 보다가 문득 황순원의 <소나기>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동시에 같이 소환된 기억 속 안경 쓴 그 남학생의 옆모습. 아, 기억났다. 사랑은 순수한 것이었다. 이번 주말은 비와 함께 학창 시절 '소나기'처럼 풋풋했던 내 사랑을 떠올려 봐야겠다. 너, 잘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