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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Oct 30. 2022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원제는 'The Great Gatsby'이다. 'great'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표현이 여러가지인데 '위대한'이라는 번역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닉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개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원고를 탈고하는 부분이다. 닉은 완성된 원고 맨 앞장에 'The Gatsby'라고 썼다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Gatsby 앞에 'Great'라는 단어를 추가한다. 내 추측이지만 이건 아마 원작에 대한 감독 나름의 해석인 것 같다. 다시 말해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건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생각인 것이다. 이 스토리를 읽고 개츠비가 위대한지 아닌지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감독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한 채 닉의 판단을 해석해서 영화 속에 한 장면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삽입했을 것이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유튜브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검색해보면 이 질문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저마다 고유의 해석을 덧붙여 놓는다.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종종 눈에 띈다. 개츠비는 그냥 여자에게 미쳐서 돈 벌려고 불법을 저지르다가 어이없이 살해당한 머저리일 뿐이라는 글도 보았다. 다 각각의 이유로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데 백만 번 천만 번 동의한다.



첫째, 개츠비의 본성이다. 그는 전무후무한 낙천주의자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곤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中-



앞서 언급했듯이 개츠비는 쥐뿔도 없는 환경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하게 자신이 엄청난 성공을 이룰 거라는 강력한 믿음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 요즘 잘 나가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꿈의 시각화'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꿈을 눈에 보이게 그려보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꿈이 좀 더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살아나서 엄청난 동기부여와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백 년 전 개츠비는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걸 알고 있었다. - '차마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현란한 하나의 세계가 그의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망각의 포옹으로 갖가지 생생한 장면들 위에 막을 내릴 때까지 그 환상에 다양한 무늬들을 더해갔다'(p123) -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낙천성 때문에 개츠비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첫사랑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있어. 개츠비가 자주 쓰는 말이다. 그는 무수한 상상과 자기암시로 벌어진 일을 없던 일 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싹 다 바꿀 수 있다는 개츠비의 확신. 그것이 그를 평생 이끌고 온 동력이다.



둘째, 개츠비는 자신이 품은 꿈의 신성함을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데이지지만, 데이지는 단순한 첫사랑이 아닌, 그가 바라 마지 않는 모든 걸 집약적으로 표상하는 인물이다. 개츠비가 5년 간 칼을 갈고 닦은 끝에 마침내 데이지를 만난 순간에 대한 묘사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돌아온 당혹스러움을 발견했다. 현재의 행복에 대한 희미한 의심이 피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오후만 해도 눈앞의 데이지가 그가 꿈꾸어왔던 데이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환상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독보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 환상 속으로 뛰어들어, 하루하루 그것을 부풀리고 자신의 길에 날리는 온갖 밝은 깃털로 장식해왔던 것이다. 아무리 큰 불도, 그 어떤 생생함도, 한 남자가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쌓아올린 것에 견줄 수 없다." - <위대한 개츠비> 中-



개츠비 본인조차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개츠비가 원하는 건 데이지가 아니다. 바로 꿈이다. 사실 개츠비는 데이지 때문에 성공한 면도 있지만 데이지가 아니었다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데이지에게 발목 잡혀서 자신이 가고자 했던 세계의 문턱에서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눈에 힐끗 보인 보도의 조각들은 마치 사다리 같았고, 나무 위 허공의 비밀스러운 장소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올라갈 수도 있으리라. 홀로 그곳에 올라만 간다면, 거기서 생명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비할 데 없이 신비로운 젖을 빨아마실 수 있을 것이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심장은 더욱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여자에게 키스하고 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의 비전들이 곧 사라질 그녀의 호흡에 영원히 결부되고, 그의 마음은 이제 신의 마음처럼 다시는 유희와 장난의 세계에 머물 수 없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의 입술이 가닿자 그녀는 그를 향하여 꽃처럼 피어났고, 상상의 육화가 완성되었다." - <위대한 개츠비> 中-



개츠비의 위대한 꿈이 데이지로 치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개츠비는 키스와 동시에 자신의 꿈을 데이지에게 결부시켰다. 그가 그토록 지나간 일을 돌이키고 싶어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그가 어떤 것,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생각, 즉 데이지를 사랑하도록 만든 바로 그것을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위대한 개츠비> 中-



개츠비는 온갖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독야청청 홀로 빛나는 인간이다. 매일밤 벌어지는 흥청망청한 술판 속에서도 파티 주최자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닉의 표현을 빌자면 개츠비는 '자신의 영원히 더럽혀질 수 없는 꿈을 숨긴 채' 더러운 인간들을 환대하고 예의 그 미소를 지어주었던 것이다. 데이지가 자신을 버리고 톰에게 돌아갈 거라는 걸 절대 믿지 않는 것도 데이지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은 신성불가침이고 지상 최대의 고귀함이기 때문에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데이지의 선택을 믿었던 것이다. 아니, 믿도록 자기 자신을 합리화했을 것이다. 개츠비는 자기 세뇌에 천부적 기질을 타고난 무모한 낙관주의자가 아닌가.



우리가 목표를 세우는 패턴을 돌아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세웠다가도 바뀌기 일쑤고 바뀌진 않더라도 실행 과정에서 갖은 핑계들이 등장하며 흐지부지된다. 처음에 세웠던 목표를, 어떤 것으로 치환됐음에도 끝까지 바뀌지 않고 밀고 나가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뭘까? 그 목표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다.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자기계발서의 홍수라 할 수 있는 요즘 출판 시장을 봐도 알 수 있다. 혼자서는 목표까지 자신을 이끌고 나갈 수 없으니까 자기계발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자기계발서 수십 권 대신 개츠비를 수십 번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끝에 가서는 좌절되긴 했으나(독자를 끌어야 하는 문학이라서 자극적인 진행과 결말은 피할 수 없다) 무일푼 제임스 개츠가 뉴욕의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가 거듭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패한 인간들 속에서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꿈을 간직한 인간.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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