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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Oct 30. 202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3)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다룬 정통 멜로물(로코 제외)에서는 꼭 엄마가 중요한 키포인트로 등장합니다. 제가 모든 작품을 다 본 게 아니라서 100%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많은 경우 그렇더라고요. 언뜻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드라마 <밀회>와 드라마 <인간실격>이 있네요. <밀회>의 주인공 스무 살 이선재는 아버지 없이 어려서부터 엄마와 단 둘이 자란 아들이에요. 그러다가 엄마가 갑자기 죽죠. 엄마의 죽음은 이선재가 소년에서 남자로 깨어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그는 돈독했던 엄마와의 기억을 간직한 채 스무 살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드라마 <인간실격> 역시 남자가 열 여섯 살 정도 연하인데요, <밀회>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점과,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 집에 가서 가끔 같이 잠을 잘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공통점입니다. 이 남자 역시 열 여섯 살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 작품에서도 시몽의 엄마인 반 덴 베시 부인이 등장합니다. 그녀가 폴에게 인테리어를 의뢰하면서 폴과 시몽이 만나게 되기 때문에 그녀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두 남녀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준 장본인이 되죠. 사실 극의 진행에서 시몽 엄마가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아요. 후반부로 가면 등장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사강이 왜 굳이 엄마라는 키워드를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어요. 작품을 자세히 읽다보면 시몽의 엄마는 아들의 삶 전반 구석구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요.



엄마의 거실에서 오전 10시에 느즈막히 일어난 잠옷 차림으로 폴을 마주한 시몽은 벌써부터 그에게서 어린아이 티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첫눈에 폴에게 반한 시몽은 그녀를 사무실까지 데려다주면서 차 안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죠. 폴은 처음 만난 남자에게 그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고 시몽은 자기가 그렇게 어리지 않다고 발끈합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대화의 흐름이죠. 시몽은 폴의 나이를 듣자마자 흠칫하는 게 아니라 감탄합니다.



"왜 웃는 거죠?"

"그 휘파람 소리에 감탄이 담겨 있어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감탄이 담겨 있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가 너무나 감미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녀는 거북해졌다.

p25



순간 그녀는 그를 챙겨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는 그녀 나이의 여자에게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기에 꼭 알맞은 그런 부류였다. -p26-




스무 살이면 바로 독립하는 젊은이들에 걸맞지 않게 시몽은 돈 많은 엄마 집에 얹혀 살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불평을 늘어놓고 실지로 매번 직장에 지각하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돈이 많아서 생각없이 산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생활 습관을 갖고 있어요. 그는 수습 변호사인데 일하는 직장도 엄마의 인맥으로 들어간 변호사 사무실이에요. 소위 엄마 프리미엄을 제대로 누리는 아들입니다. 스스로도 자신을 부모 덕에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소일거리나 찾아다니는 그런 응석받이 풋내기일 뿐(p45)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스물다섯 평생 물질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남자예요. 시몽의 엄마는 폴이 시몽의 잘생긴 외모를 칭찬하자 아들의 아기 때부터 학교 다닐 때까지의 앨범을 꺼내와 자랑할 정도로 아들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여자예요. 집안을 가득 채운 시몽의 사진은 아들에 대한 엄마의 열정과 집착을 잘 보여줍니다. 열다섯 살 때 어머니의 여자 친구에게 열정을 가져봤을 정도로(p31) 연상의 여인에게 끌리는 성향도 이런 성장 배경이 한 몫 했을 걸로 추측됩니다. 그런 그가 아름답고 고상한 열네살 연상의 폴에게 엄마 집 거실에서 사랑을 느꼈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입니다.




시몽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스물다섯 나이에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 역시 빼놓지 않습니다. 그녀 직장 근처에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모습으로 숨어 있으면서도 시몽은 엄마를 떠올려요.



그에게는 분명 정신분석이 필요했다. 적어도 그의 어머니의 주장은 그러했다. -p39-




즉흥적이고 무모해보이는 시몽은 그러나 내면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얄팍하지 않습니다. 그 나이 남자가 찾을 법한 '마흔 살 먹은 남자가 떠올리는 청춘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가볍고 쾌락을 즐기는 여자에게는 마음이 도통 끌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해요. 성인이 된 지금까지 지나친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인간에게 고독이라는 게 얼마나 큰 형벌인지 그 본질을 꿰뚫고 있어요. 여기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최고의 명대사가 탄생하죠.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가장 지독한 형벌이죠. 저로서는 그보다 더 나쁜 것, 그보다 더 피해야 할 것을 달리 모르겠습니다." -p46-




아버지가 디너파티나 인테리어 같은 큰 이슈에도 등장하지 않는 걸로 보아 부재 중인 걸로 보입니다. 아마도 시몽은 편모 슬하에서 형제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어려서부터 살아온 것 같아요. 그 가족 관계가 시몽에 대한 많은 걸 설명해 줍니다. 시몽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고독을 회피하는 그의 성향도 이 가족 관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어요.




수줍은 성격 때문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시몽에겐 어떤 직관력이나 냉철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p56-




거기에 시몽의 고통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의도적으로 엄마를 멀리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본인이 잘 알고 있어요.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내면이 폴을 만나면서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 시몽을 괴롭힙니다. 25년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듯한 느낌,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이죠. 그동안 만나 왔던 여자들에게서는 사귀던 여자들에게 그토록 빨리 싫증을 내고 그들의 속내 이야기나 비밀,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보호자 역할을 맡기려는 그들의 시도에 겁을 내던, 줄행랑을 치는데 그토록 익숙했던(p64) 시몽은 폴의 연인이 바람 피우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기꺼이 그녀의 곤경을 막아주고 싶다는 욕망을 느낍니다. 처음으로 엄마 떼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서고 싶어진 거죠. 그러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폴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요. 시몽은 로제에게서 폴을 빼앗아오고 싶은 갈망에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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