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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솔로지클럽 Feb 28. 2023

삿포로 워크샵 4일차 : 비에이 후라노 현지 투어

작은 나무 한 그루 덕에 만들어진 관광명소, 비에이를 가다.

삿포로 여행 4일차는 비에이 투어를 가는 날이었다. 이거야 말로 삿포로에서만 할 수 있는 투어여서 기대가 컸다.


하루를 온전히 쏟아야 하는, 서울에서 부산 왕복하는 것만큼이나 장거리 투어였고, 날씨 운을 많이 타는 여행이었는데도 관광객이 한가득이었다.


후라노, 비에이는 홋카이도의 대자연을 즐길 수 있고 4계절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임없는 도시라고 한다. 봄에는 트래킹, 여름에는 라벤더 밭,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과 스키장. 광활한 대지를 어떻게 관광지로 탈바꿈 시켰는지 궁금증이 가득했다.


우리는 한 달 전에 미리 예약하고 갔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유명한 투어사는 매진된 곳도 많았다. 1인 당 거의 10만 원에 달하는 투어인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가고자 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했다.


아침 8시, 집결지에서 모여서 꽉 찬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1시간 정도 달리다가 휴게소에 내리는데 그때부터 삿포로 시내랑 완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도 좀 더 뾰족뾰족해지고, 눈이 본격적으로 쌓인다는 게 뭔지 절실히 실감하게 되는 풍경들.


이 투어를 참여하고 느낀게, 확실히 외국인 관광객으로서 지방 투어를 할거면 무조건 여행사를 끼고 가는 게 마음편하다는 거였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교통 변수가 엄청 크고, 앞서 말한대로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투어는 가이드의 재량대로 동선과 휴게소가 바뀌어서 사람이 가장 적은 곳을 찾아 움직인다. 이 모든 정보를 모르고 직접 와야했다면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국내 여행지들도 마찬가지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정보를 찾기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서울 이외의 지역은 한국 사람들한테도 큐레이션된 정보가 많지 않다보니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우리의 첫 일정은 패치워크 로드였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광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윈도우 배경화면 겨울 버전 같은 느낌. 특히 멀리 보이는 설산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설산 위로 흰 구름 같은게 계속 뿜어져나와서 뭔지 가이드님께 여쭤봤더니 휴화산이라서 그렇다고 하셨다.


패치워크 로드라는 멋진 이름을 누가 지었나 모르겠는데, 마케팅을 끝내주게 잘한다. 광활한 눈밭이 엄청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여느 관광지 답게 이런 포토스팟이 하나쯤 있기 마련. 자연이 만든 스키장이 바로 이 곳 아닐까. 가이드님이 멋지게 한 장 남겨주셨다.


이 나무가 패치워크 로드의 명물 나무다. 겨울이라 앙상하기도 하고, 이 나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는데 그걸 못 봐서 감흥이 크진 않았다.


지역을 배경으로 영화나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순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배경도 이야기를 부여해주자 서사가 생겼다.


패치워크 로드를 다 보고는 켄과 메리 나무를 보러갔다. 사실 우리 눈엔 그냥 이름 잘 붙인 나무여서 (특히 겨울이라 가지가 앙상했음) 눈 앞에 펼쳐진 화산을 보기 바빴다.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휴화산과 설경에 그저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환경을 정말 잘 이용해서 투어로 개발시켰다는 생각과 함께. 눈이 녹으면 보리밭이 되는 농경지에 나무 하나를 심어두고 관광지로 만들어버린 일본인들. 태백의 단풍과 양양의 별밤을 꼭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켄과 메리나무까지 보고는 비에이 역으로 가서 밥을 먹는 일정이었다. 비에이 역은 아주 아주 작고, 에버랜드 테마파크 처럼 꾸며진 동네였다. 비에이 인구는 1만 명 정도로, 관광객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관광객의 관광 수입이 대부분일거라 식당들도 관광객에 특화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준페이'라는 식당이 새우 튀김 하나로 대박이 나서, 관광사들과 제휴를 맺어 모든 비에이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 끌지만 우리는 일정 상 다른 곳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아주 작고 귀여운 가정식 식당이었는데 관광객인 우리에게 몇 시 출발이냐고 묻고는(비에이에서 자유시간은 1시간 남짓으로 자칫 잘못해서 웨이팅하는 식당에 가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돌아오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한다.) 음식을 빨리 내어주셨다.


스팟 투어를 많이 다니는 관광지의 특성이 잘 보이는 식당의 응대였다. 준페이 역시 여행사들과 제휴를 맺어서 일반 관광객은 먹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재미있는 관광 산업의 구조를 보는 기분이었다.


밥먹고 시간이 좀 남아 돌아다니는데 공짜 썰매장을 발견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나라라서 이렇게 곳곳에 공짜 썰매장이 만들어져있다. 관광객 입장에선 별 것 아닌 이 시설물이 얼마나 큰 재미이자 기억으로 남는지 잘 아는 것 같다.


돈 안 드는 이런 재미요소를 추가해두는 것, 기억해야 할 포인트다.


다음 목적지는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 정말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나무의 군락이 아니라 딱 한 그루만 심을 생각을 했던 나무 주인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라 부르기 시작한 사람들도 대단했다.


한 그루의 나무였던 것이 이름을 지어 부르자 엄청난 관광지가 되었다. 이게 스토리의 힘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했다.


투어는 쉼이 없다. 또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 자작나무 숲으로 향한다. 조붓한 전시관이 있는 자작나무 숲길인데, 사진 찍고 시간을 보내기 최적화 된 공간이었다.


차로 2~30분 거리에 이런 방문 공간들을 만들어둔 게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포인트였다.


탁신관 다음 코스는 비에이 투어에서 두 번째로 인상깊었던 흰수염 폭포. 이건 자연경관이 준 축복이었다. 이런 것들은 개발한다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인상깊었던 게, 자판기에서 따뜻한 음료들을 큐레이션해서 팔고 있었고 인기가 엄청 많아서 매진된 것도 많았다. 카페가 들어오기 외진 공간에 있다보니 자판기도 적절히 잘 활용하는 게 배울 점이었다.


또,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예쁜 가로등이나 표지판을 많이 설치해둔 것도 사진 찍는 관광객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점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청의호수였는데 겨울엔 원래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한다. 호수 위로 눈이 덮여 그냥 눈밭이었다. 지방 관광으로 어떻게든 한 데 묶어 모든 곳을 방문하는 투어 특징이겠지만 생략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생략해서 맞춤형으로 운영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쉴 틈 이라고는 없는 비에이투어...다음 목적지는 닝구르 테라스라는 곳인데 요정이 사는 집이라고 스토리 텔링하는 곳이다. 근데 솔직히 볼 건 별로 없었다. 우리 투어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다들 구경하시는둥 마는 둥 하고 버스로 일찍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닝구르 테라스가 좋아진 순간...후라노 우유를 찾았기 때문. 삿포로 여행 처음부터 먹고 싶었던 건데, 비에이 지방에만 판다고 했다. 저온살균 우유여서 엄청 고소하대서 기대를 많이 했다. 일단 병 디자인이 사람 감성을 자극하는 뭐가 있다.


맛은 사실 파스퇴르랑 비슷했는데, 이걸 찾아다니는 과정이 전부 맛있어서 더 맛있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삿포로, 마케팅 정말 잘한다.


솔직히 생략할 수 있다면 무조건 생략할 코스지만, 후라노 우유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보람이 있었다. 지역 투어를 계획한다면 굳이 무리해서 재미없는 일정을 늘리지 않는게 좋겠다.


또,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비스포크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삿포로 역에 도착하니 6시 51분! 가이드님 말씀으로는 정말 정말 1%에 속하는 운 좋은 여행이랬다. 삿포로는 눈이 많이와서 우리보다 일주일 앞서 왔던 사람들은 고속도로에 네 시간을 묶여 밤 11시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이 찾아서 일본 방송사에서 비에이 취재를 나오기도 했고, 비에이 보리밭 관리인들이 관광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니 엄청난 열기다.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는 첫 날 밤에 너무도 좋았던 나나카마도를 한 번 더 갔다. 너무 재밌는게, 어제 신메뉴가 출시돼서 새로운 메뉴를 맛볼 수 있게 됐다. 4박 5일 여행 동안 신메뉴가 출시돼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참 럭키했다.


줄도 별로 안 길어서 한 15분 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라고 어리버리 하지 않게 주문할 수 있는 우리가 기특했다.


왼쪽 파르페는 금귤절임과 머랭이 메인이고 오른쪽 파르페는 밤과 흑임자 머랭이 메인이다.


왼쪽 파르페는 내 원픽이 됐다. 머랭을 이렇게 잘 쳐도 될까? 진짜 달지 않은데 눈처럼 입에서 녹아서 사라지는 맛이다. 저 파르페는 봄을 그냥 형상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맛이었다. 금귤이 이렇게 새콤달콤한지 처음알았다. 봄을 파르페로 만들어 먹는 재미를 선사해주다니. 감동이다.


오른쪽 파르페도 구수하니 맛이 좋았다. 특히 뿔처럼 올라간 카라멜라이즈 견과류가 사탕같이 재밌었고, 밤 크림도 정말 맛있었다. 파르페, 커피, 사케, 사토보다 더 재미있는 맛이라 좋았다.


짧은 여행에서 두 번이나 방문한 가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게의 시즌별 신메뉴를 새로 먹어볼 수 있다는 것 모두 좋았다. 시메파페 문화 같은 재밌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고요가 만든 보드게임을 했다.


마지막 날 아침으로는 조식으로 가이세키 정식을 예약해뒀다. 11시 비행기라 신치토세 공항으로 8시 반까지 도착하려 했는데 조식까지 예약한 우리...게임을 장렬하게 다 지고 나서 우리는 짐싸고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줬다.


삿포로 5일차 일기는 숙소의 가이세키 정식과 신치토세 공항 후기로 돌아옵니다.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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