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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Aug 26. 2022

꼭 톰크루즈라서 매버릭이 멋있는 건 아니야.

다들 감탄할 때 난 울었다. 또 배웠다. 아, 이렇게 인생을 살아야겠구나

만성 허리디스크를 달고 다니는 나에게 오랜시간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일은 그렇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허리보호대며 목보호대 하다 못해 자세교정끈까지 (Posture Corrector. 3년째 착용하고 있는데 등통증이 확실히 줄어듭니다. 강력추천! 저같은 분들을 위해서 구매링크 걸어둡니다.) 항상 구비해놓고 조심조심하기에 영화를 보기위해 영화관에 가기까지 마음을 먹으려면 난 집요하게 캐묻는다.


정말 재미있어?

허리가 욱신거려도 볼 만한 가치가 확실해?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것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겠어?


까칠하게 구는 것 같아보여도 이 세가지 질문에 대답이 모두 '예쓰'라면 그 후로는 망설임없이 영화관으로 간다. 영화관이 저물어간다지만 집에서 보는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경험적 가치는 분명히 있다.


60대가 되어도 톰크루즈는 톰크루즈더라, 오랫만에 나온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다, 시퀄이 오리지널을 이겼다, 등등의 뉴스가 심심치않게 들려와도 내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이유다.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탑건을 먼저 보신 엄마가, 심지어 한국도 아니고 캐나다이기에 (한국어 자막이 있을리 만무하니) 영화를 내용 전체를 전부 제대로 알아들으셨을리가 만무한 엄마가 10번 물어도 10번 '예쓰'라며 같이 영화보러 가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막 3시간, 이렇게 영화가 되는 것도 아니야, 라면서 확인도장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찍어주기까지.






비단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최소 한두번의 커다란 삶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 변곡점들은 그 이후의 삶을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동안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문들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삶의 경험을 하는 것은 확실히 중압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배우중 한명이라는 톰크루즈에게 이 삶의 변곡점은 1986년, 오리지널 영화 

'탑건 (Top Gun)'을 통해 찾아왔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라이징스타에서 순식간에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발돋움했다. 



탑건: 매버릭. 이건 영화관에서 봐야하는 영화다. 영화관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무려 3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 영화의 시퀄, '탑건: 매버릭 (Top Gun: Maverick)'이 나왔다. 오리지널 탑건에서의 풋풋했던 20대 새내기 전투비행사 매버릭이 어느새 눈가의 주름이 진해진 50대의 프로 전투비행사가 되었다. 


5월에 개봉했는데 놀랍게도 여전히 영화관에서 제법 괜찮게 상영중이라는게 놀라웠다. 찾아보니 오늘 (2022년 8월 셋째주) 기준, 미국 국내 박스 오피스 6위의 순위에 올랐단다. 미국 밖에서는 총 7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여들었단다. 게다가 이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수치라니 3개월넘게 상영관에 걸려있을 이유가 확실하고도 남는다.


영화관에 가기 바로 직전까지, 회사 일로 리더십에 대한 기사들을 잔뜩 읽다가 간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발견한 탑건: 매버릭의 스토리 곳곳에 숨겨져 있는 짧고 명료하지만 분명한 리더십의 기술은 절대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영상미로만 승부하지만 않도록 오랜시간 스토리에 정성을 기울이고 또 기울였다는 것이 마음속으로 진하게 느껴져서 감동했다. 


영화속 주인공 매버릭이 매력적인 이유가 단지 그 역을 연기한 톰크루즈가 멋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치밀하게 각인시킨다.


노트에 적은 이 영화에 나오는 3가지 대사,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 대사들이 함축하는 리더십에 관련한 교훈들을 여기에도 나눠볼까 한다.


(*Disclaimer: 워낙에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라서 많이들 보셨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영화의 내용의 일부가 들어가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트레일러나 영화배우들의 인터뷰 정도에서 접할 수 있는, 그래서 영화의 재미를 해칠 수 있는 큰 스포일러까지는 되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하는 적은 양의 정보이지만 이 또한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난 후에 제 글을 읽어주세요.)






훨훨 날고자 한다면 그만한 준비가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추락해버릴 터.




Don't think. Just do.


가족과 다름없었던 친구이자 동료였던 구스의 아들인 루스터는 분명 뛰어난 비행조종사였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조종간을 잡을 때에도 신중하고 생각이 많은 탓에 짧게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었다.


미국 해군조종사로써 실전의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매버릭은 루스터에게 반복해서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Don't think. Just do."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 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뉴욕타임즈 출신 기자 Charles Duhigg의 저서 The Power of Habit은 습관이 우리의 생활 전반을 넘어서 커다란 조직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심리학, 행동경제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써내려간 매우 유익한 책이다. 수년간의 연구끝에 Duhigg는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의 약 45%가 습관, 즉 생각없이 하는 '디폴트'적 행동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습관은 반복된 행동의 패턴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엄선된 좋은 생각들과 행동들 위에 발생한 습관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인도한다. 


결국 매버릭의 이 말은 루스터처럼 수년간 끈기와 열심을 가지고 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왔다면 위기의 찰나의 순간이 왔을 땐 나의 시간들이 뒷받침해주는 나의 본능, 나의 습관에 기대도 좋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 순간에 굳이 이리저리 재려고 하고 생각하려 든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반듯하고 단단하다면 나를 믿어주는 것이 가장 맞는 선택이다.







과도하게 겁먹지 말자. 이 세상에 온 나는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It's not the plane. It's the pilot.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우리네 생활 전반의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굳이 통계적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매일 매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일. 더군다나 2020년 초반부터 세계를 뒤흔든 판데믹은 업무에서 쇼핑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화의 가속도에 불을 붙였다.


인공지능, 로보트, 웨어러블, 음성인식, 빅데이터...


미디어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테크놀로지 단어들은 우리를 재촉한다. 최첨단 시대에 알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것들은 계속해서 쌓여만가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나를 포함한) 이들은 묘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급격한 디지털화는 나의 근본이라 믿는 것들에 대해 심술스런 흔들림을 놓고 간다.


미래에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종류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내 재능, 내 비전이 심겨져 있는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나의 가치도 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탑건: 매버릭에서 매버릭과 팀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듯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의 상관들조차도 성공여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난제를 여러번 통과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미션. 과연 이것이 가능하기는 한 작전인지에 대해 묻는 팀원에게 매버릭은 답한다.


"중요한 것은 파일럿이야. 비행기가 아니라."


클래식 비지니스 도서이자 여전히 MBA에서 필수적으로 읽히는 Good to Great의 저자 Jim Collins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기업들을 면밀하게 조사, 그들에게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지 연구했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을 6단계로 나누었고 썩 괜찮은 기업이 아닌 훌륭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 6단계를 차례대로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6단계중 가장 첫단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다름아닌 '레벨5 (가장 우수한 수준의) 리더십 스킬'이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레벨4의 리더들이 자신의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구체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반면, 레벨5는 이러한 바탕 위에 겸손의 미덕 그리고 무섭도록 단단한 의지 및 탄성이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어느 기업이 군계일학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능력, 재정 상황 등이 아닌 그 기업을 전두지휘하는 리더의 자질이 가장 먼저 되어야 한다는 뜻. 


매버릭은 이 철학을 굳게 믿고 무섭도록 자신의 자식뻘되는 파일럿들을 훈련시켰다. 


지금은 타계하신 이어령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전 하셨던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생각난다. "별 거 없어, 쫄지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는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야겠지만, 결국 나를 지탱하고 자라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나임을.









"It is time to let it go."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쪽팔리고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시간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지만 참 창피하게도 우리는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강도로 쪽팔리고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일들을 한다. 모든 인간의 운명적인 불완전함때문이다.


성어거스틴은 "과거가 없는 성자는 없고, 미래가 없는 죄인은 없다"라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한다는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과거의 일들은 종종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의 앞길을 막는 커다란 짐덩이이자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다.


실전 전투비행기술에 있어서 과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자랑하는 매버릭이지만 그에게는 오랜 시간 떨어내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다. 끝맺음을 하지 못한 과거의 일은 그가 약해져있을 때 찾아와 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근본적 뿌리를 흔들려고 한다.


이를 아는 탑건 출신 동기 아이스맨은 단 한마디로 그에게 진심을 전한다.


"It is time to let it go."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은 둘 다 똑같은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끝맺음을 제대로 맺지 못한 문장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숙제처럼 짐을 얹을 뿐이다. 둘 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면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하자. 마침표를 크게 찍고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면 (비록 절대 완벽해질 수는 없을지언정) 훨씬 더 멋지고 근사해 질 것은 분명하다.






미디엄에 올린 글을 조금 각색해서 올렸습니다. 

영어로 쓴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medium.com/@antheid/surprising-yet-powerful-leadership-skills-from-top-gun-maverick-you-dont-want-to-miss-3bb2bb226a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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