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power'
백세시대, 계절로 치면 초여름에 해당되는 새파란 나이이지만 나이가 드니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예를 들자면 둘리의 고길동 아저씨는 나쁜 분이 아니었고, 도라에몽의 진구는 강약약강의 그렇게 신의가 있는 친구는 아니었더라는 것.
마찬가지로 나이가 드니 다른 온도와 결로 다가오는 단어들도 있다. 내게는 투지와 같은 의지력에 관련된 단어들이 그랬다. 밤을 새고 나도 얼굴에 피곤한 기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던, 아무거나 먹어도 소화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던, 무릎이나 목이나 허리가 아픈 건 공감하기 어려웠던 그때에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은 체력적인 이유보다 게으름같은 문제일 때가 드라마틱하게 많았던 그 시절, 누군가 내게 좀 더 왜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의지력을 키워야 한다고 나를 타박했더래도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그 때.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이 마치 오래된 핸드폰처럼 충전을 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야속하게도 방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더라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된 순간부터는 그 단어가 종종 어찌 그렇게 억울하게 들리던지. 양질의 수면,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이 세가지를 지킨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었다. 딱 한번 사는 인생, 왜 더 잘 살고 더 잘하고 싶지 않겠느냐만 노력의 방향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정한다던가,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영민한 tactics 같은 '질'에 관련된 것이 아닌, 정해진 나의 체력과 거기에서 오는 능력의 '양'에 관련된 이슈를 그저 의지력 없음으로 타박하는 소리는 "너나 잘해!"라는 소리를 꽥 지르고 싶게 만드는, 참 단순하고 무식한 것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이테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알게 되었다.
당신의 환경은 안녕하십니까
국가대표로 국제적인 경기에도 출전했다가 은퇴하고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있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들 처음에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오지만 이 사람이 정말 오래 가는 사람인지, 끝까지 제대로 운동을 할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단순한 몸차림이란다. 딱히 필요 없는 이런 저런 운동 악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오래 가는 경우는 굉장히 적더라고. 내 몸가짐을 가볍게 하고 운동이 끝난 후에 다음 수업에 들어오기 편하도록 미리 옷가지를 정리해놓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끈기있게 잘 가더라는 이야기.
변화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의지력만큼,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기운이 도는 곳, 사람들이면 그곳에 머무는 것 만으로도 느린 속도라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성향을 조금 더 작게 쪼개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내가 (좋은 의미로) 이기고 싶은 사람과 어울려야 내가 들어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전, 당장 나를 좀 더 부지런하고 타이트하고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극히 일상적인 부분에서 적용 가능한 환경 설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체력은 곧 정신력! 새어나가는 스트레스 요소를 줄여야 해
책 Willpower 의 저자 중 한명인 Roy F. Baumeister 박사는 오랜 연구를 통해 의지력로 주로 설명되는 정신력은 체력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밝혀냈다.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는 체력이 정해져 있는 것 처럼, 정신력 또한 유한적이라는 것이다. 의지력을 고갈(ego depletion)시키는 것으로 크게 네가지 요소로 분류했다.
1. Control of Thoughts
옷깃에 묻은 얼룩,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오늘의 내 머리스타일, 이런 것들을 무시하기 위한 노력
2. Control of Emotions
나쁜 생각을 빨리 지우기 위한 노력, 혹은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픈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한 노력
3. Impulse Control
흡연, 폭식 등과 같은 일들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노력
4. Performance Control
데드라인 준수, 해야하는 일을 완벽히 마무리, 꼼꼼한 일 처리 등 을 위한 노력
다이어트로 먹고 싶은 음식을 참는 중이라고 한다면 이는 3번에 해당한다. 정해진 에너지 양 중에서 큰 뭉텅이가 잘려나가는 테스크를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머지 남은 에너지로 다른 일들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2번에 해당하는 감정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 일어난다던가 1번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쁜 생각을 억지로 떨궈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결국 그날의 의지력이 고갈되어 버려 폭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의지력은 항아리에 들어있는 물의 양에 비유할 수 있다. 항아리의 크기가 정해져있는 만큼 들어갈 수 있는 물의 양도 한정적인데,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이 항아리에서 물을 퍼내서 써야 한다. 남아있는 물의 양이 적은데 높은 의지력을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아예 하지 못하거나 억지로 했더라도 엉망으로 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이치다.
무조건 의-지, 노오력이 아니다. 똑부러지게 까칠해야 살아남는다. 오래간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나의 항아리는 얼마나 큰 것일까? 저자가 설명하길 체력과 의지력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체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럼 내 항아리는 줄어들기밖에 못하는 걸까? 나의 항아리의 사이즈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의지력은 자제력과 다른 개념, 그러나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다. 자제력에 대해서 좀 더 깊숙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종류의 '힘(strength)'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하나는 힘의 강도를 듟하는 파워(power)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지구력, 스태미나(stamina)이다. 이 두가지 중 스태미나를 기르는 활동이 자제력을 기르고 의지력의 총량을 높이는데 매우 효과적임을 저자는 여러 연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태미너를 기르기 위해서 억지로 특별한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일상속의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의자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기, 오른손잡이의 경우 일부러 왼손으로 양치와 같은 일을 해보기, 줄인 말이나 비속어 등을 쓰지 않기와 같은 단순한 일들은 스태미너 증강에 제법 효과적이다.
의지력 매니지먼트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의지력 항아리가 큰다 한들, 펑펑 쓰다보면 원하는 일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만 낳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나의 의지력을 큰 덩어리로 소모시키는 중요하고 무거운 일들은 한꺼번에 동시에 하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해야 한다. 물이 새는 지붕처럼 시나브로 내 항아리에서 물을 빼내가는 에너지 도둑들을 간파하고 이를 제거한다. 정신력과 체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건강한 몸을 위해 음식을 가려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왜 주변 환경을 늘 단순하고 깨끗하게 유지했는지,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일을 시작할 때 시간을 정해두고 했는지 연결되어 이해되는 부분이다.
당신을 키워주지 못하는 것들은 망설이지 말고 덜어내세요
꼬맹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릴 적 우리의 호기심과 관계는 넓혀지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가지치기하면서 깊어지는 시기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의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도돌이표처럼 맴돌았다.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인생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루하리 만큼 그들의 생활은 단순하다. 비슷한 옷,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정한 루틴이 있으며 습관으로 굳어져 생각하지 않아도 그대로 매일 매일 몸이 따라간다. 자신을 비교적 객관적인 눈으로 투사하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 키워주지 못하는 것들을 덜어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나 역시 좀 더 세밀하게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가지치기를 해보기로 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내 뱃속이 불편하지만 편하거나 익숙해서 먹는 식품군들을 장바구니에서 빼냈다. 예뻐서 샀긴했지만 입을 때 마다 불편해서 신경이 쓰이는 옷들은 친구들에게 주거나 기증했다. 썩 괜찮긴 하지만 나에게 딱히 흥미를 끌지도 그렇다고 큰 이익을 주는 것 같지도 않은 책장의 책들, 핸드폰의 어플들을 정리했다. 만나서 최소 2시간동안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눠도 좋을 것 같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핸드폰의 연락처도 정리했다. 계획을 짤 때에는 별도의 힘이 들지 않도록 세부 사항까지 정해 계획을 짰다 (예를 들면 '앨리스에게 정보 전달'이 아닌 '9시에 앨리스에게 이메일로 1.2.3의 내용을 전한다').
내가 평생을 걸쳐 잘 키워내야 하는 화분은 내 인생, 딱 하나다. 내 에너지만 뽑아가는 잡초들은 미련두지 말고 뽑아내고 충실하게 들여다보고 가꾸고 거름을 줘야겠지.
당장 눈앞의 즐거움이나 이익보다 장기간의 즐거움과 이익을 선택하는 것.
가끔 소확행은 좋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꼈다가 대확행을 이뤄보도록 할 것.
마음이 바쁘구나. 엉덩이가 가벼워야겠다. 오늘 저녁, 차분하게 일기를 써보는 것 부터 시작해야지.
*이 글에 거론된 책
Willpower: Rediscovering the Greatest Human Strength by John Tierney and Roy Baumei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