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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Nov 22. 2021

독립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엄마와 다시 같이 산다.

Being Mortal by Atul Gawande

약 3년전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지옥을 닮은 것만 같은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숨통이 조여오는 시간들의 연속으로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에게 울분을 토하듯 사정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곧장, "딸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을 여러 간식들과 함께 가장 빠른 소포편로 보내주었다. 


이 책을 쓴 일본의 정신과의사는, '엄마는 자신과 다른 성(gender, 性)을 가진 아들은 신비롭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같은 성을 가진 딸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동시에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다고 생각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쉽다'라는 설명했다. 당시 나의 상황에 꼭 들어맞는 해석이었다. 같은 지붕아래 사는 것 보다 차라리 아주 작은 지하방이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간절해 질 때 쯤, 결국 나는 작은 콘도(한국으로 말하면 아파트)를 얻어 독립을 했다. 그로 인해 고속도로를 최소 20분은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물리적거리가 나와 엄마사이에 순식간에 생겨나게 되었다. 이 거리는 서로에게 숨통을 트여주었고 결과적으로 깜깜하게만 보이던 관계의 회복을 꿈 꿀 수 있는 끈이 되엇다. 




한국땅을 떠나 캐나다에서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엄마는 항상 이곳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바깥 세상'이었다. 언어의 어려움을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의 뉴스를 꼬박꼬박 찾아보며 '안쪽 세상'을 생각하며 걱정하셨다. 한달정도 거의 매년 한국을 다녀오시는 것이 정해진 연간행사였는데 전세계를 흔든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발이 묶여버렸다. 그러던 중 약 한 달 쯤, 대뜸 내게 전화를 건 엄마는 내게 통보 하나를 전하셨다. "나 12월달 초에 한국 간다. 이번엔 가서 최소 반년은 있다 올꺼야. 이미 비행기 티켓도 샀다."


장기간 집을 비운다는 것은 내가 엄마집에 들어가서 그 집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우스(한국의 주택 개념)에 사는 사람들은 별도의 관리비를 내지 않는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히 집을 책임지고 살펴야 한다는 책임이 따라온다. 겨울이 긴 캐나다, 내 집 앞 도로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않아 누군가가 넘어져서 부상을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은 그 집주인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겨울에 하우스에 사는 것은 거의 매일같이 부지런히 내 집 주변의 얼음을 깨고 눈을 쓸고 닦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엄마 집에는 나이가 지긋한 강아지가 두마리나 있는 상황. 내가 당장 엄마집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었다. 




토론토 남쪽 Humber Bridge에서 엄마와 우리집 상전님들. 짧은 가을이 아쉬워 일부러 석양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나갔다. 




엄마의 한국에 대한 향수병은 알고 있었고 올 해 말쯤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 생각도 든다며 말씀은 하셨었지만, 장기간의 그것도 출국날짜가 정해져버린 급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즉시 박스를 모으고 출근 전, 퇴근 후, 그리고 주말마다 틈틈히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허리와 팔이 얼얼해지도록 짐을 싸고 옮기고 실었다. 엄마가 중하게 아픈 것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라던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제는 엄마와 같이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립은 그렇게 3년만에 쉼표가 찍혔다. 


  




독립을 하고 나간 후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되었기에 이번에 다시 같은 지붕에 사는 시간에는 예전보다는 낫겠지, 라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게다가 끝이 정해져있는 일시적인 동거아닌가. 만에 하나, 서로 얼굴 붉히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엄마의 출국날이 있으니 내가 잘 참아봐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제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이 어쨌든 공중으로 날아가는게 아쉬워 이삿날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뤘던 것은 있었다.


 


내 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책들. 싸고 옮기느라 나 좀 고생했다. 



그렇게 3년만에 나는 또 다시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엄마와 함께 하게 되었다. 자택근무를 주로 하는 나의 일에 따라 엄마와 집에서 마주보며 식사를 하고 나란히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다른 침대이지만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같이 붙어 산 시간에 비해 턱도 없이 짧지만 3년의 시간동안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다가 다시 같이 지내게 된 엄마는 내 예상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계셨다.


엄마에게 지난 3년은 처음으로 혼자 오롯이 살아보는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바글거리던 집에 나이가 지긋한 (그래서 얌전한) 강아지 두마리만 남게 되자 당연히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생활방식에 따라 하루 하루의 삶을 사시며 자유를 맘껏 만끽하셨을 것이다. 내게 종종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긴 하셨지만 냉장고와 찬장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차게 되었고 엄마의 동선에 따라 집안의 가구들의 위치도 조금씩 변경되었다.


이렇게 평생 처음 혼자 사는 시간, 당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위에 더해져 나를 놀래킨 것은,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드신 엄마의 더욱이 대부분의 노인들이 보인다는 '고집'이었다. 이는 내가 평생 엄마의 성격에서 나오는 고집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상대방 마음이 아무리 좋은 의도였고 제안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당신의 마음에 찰나에 와닿지 않으면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는 것과 같은 고집이었다. 


약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고혈압을 주의해야 한다고 내가 걱정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으신 엄마에게 혈압 안정화에 좋은 야채스무디를 만들어드리고 짠 라면은 가급적 드시지 말라고 하자 "내 몸이고 내 건강이고 내 인생이야. 네가 왜 나한테 가르치려드니?" 며칠 후, 드라마를 보다가 바닥에서 까무룩 주무시는 엄마께 침대에서 주무시라고 하시자 극구 거부하신 밤의 다음날 아침, 밤새 불편하시지는 않으셨냐고 여쭈니 "난 완벽하게 건강하고 멀쩡해! 신경꺼!"


경고등도 없이 휙 날아오는 돌덩이같은 말과 화난 표정은 첫 며칠간 나를 굉장히 당황케했다. 마치 나는 문을 똑똑 노크만 했는데 코앞에서 문이 확 닫히고 잠금쇠가 꽉 조여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얼어붙게 하는 일이 있을때마다 노트에 작성을 했고 어느정도 리스트가 쌓일 때쯤, 그것들을 훑어본 후에야 깨닫게되었다. 떨어져있는 3년동안 엄마는 어느새 노인의 모습을 많이 하고 계셨다. 


 




Being Mortal을 쓴 의사이자 작가 Atul Gawande는 책에서 '노화'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널싱홈(양로원/요양원)에 들어간 한 노인의 이야기. 활발하고 사교성이 높은 그녀는 나이가 들어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개개인에게 할당된 정해진 협소한 공동 및 개인 공간, 그리고 의무적으로 따라야하는 원내 스케쥴에 그녀는 매우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들이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나만의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며 개인의 물건은 작은 서랍장에 넣을 정도만 허용이 되는 등, 평생을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자율성이 사라지자 늘 생기가 돌았던 그녀의 얼굴에는 얼마 되지 않아 깊은 그늘이 깔렸다. 그녀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올 해 읽은 책들 중에 기억이 오래 남도록 좋았던 Being Mortal. 사진은 저자 Atul Gawande.




책의 말미에 나오는 작가 아버지의 이야기역시 긴 여운을 남겼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의사였던 아버지는 신경을 누르는 악성종양이 자신의 몸에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생 의사로 살아왔기에 환자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라, 더이상 정상적으로 의사생활을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끈덕지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죽음의 문턱이 가까워오면서 잠에서 오랫동안 깨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거든, 인위적으로 회생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두려웠던 아내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위기의 순간에서 그를 소생시키자 그는 왜 자신을 살렸냐고 화를 내었다. 의사일을 하지 못하는 극도로 나약해진 육신에 도보는 커녕 자력으로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한 환자의 삶은 그에게 더이상 연명할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 


떨어져있던 3년의 시간동안 내 생각보다 더 훌쩍, 삶의 경로를 건너가신 엄마를 보며 이 책을 생각했다. 환갑잔치하면 욕먹는다는 100세시대의 오늘날이라지만 평균적 삶의 길이가 길어졌을 뿐, 모두가 걷는 인생의 내리막길 언덕 언덕은 변화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이런 저런 잔병치레며 여전히 여러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나와는 달리 타고난 건강체질이라는 소리를 평생 들으셨던 엄마는 60대에 들어서니 몸의 이곳 저곳에서 황색 신호등이 켜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평생 전혀 문제 없었던 혈압처럼. 그래서 더욱 '내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영역'이라는 것에 대한 날선 고집이 생긴걸까. 그래서 노인들이 고집이 세어진다고 하는 것일까.


몇 년 전, EBS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에서는 100세의 나이가 가까운 여러 초고령자들의 삶을 긴밀하게 관찰했다.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만류하는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우리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이는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살아있다는, 그래서 비록 느릴지라도 내 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인정을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고 싶은 욕구가 진하게 깃든 행동이었던 것이다. 









자정즈음에 잠자리에 들어 여섯-일곱시간을 푹 자고 일어나는 나의 수면패턴과 달리 엄마의 수면패턴은 딱히 정해진 게 없어 보인다. 낮잠을 많이 주무신 날에는 나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가도 밤중에 일어나 집안 곳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신다. 어젯밤이 딱 그랬다. 나를 의식해 조용히 하신다고 신경쓰시는 것 같았지만 3시부터 집안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사부작 사부작, 달그락 달그락 소리에 나는 알림이 울릴 때 까지 침대에 누워 눈만 감은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정오쯔음에는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엄마의 시선이 닿지 않을 방 구석 의자에 앉아 기절한 듯이 한시간을 잤나보다. 짧게라도 침대에 가서 당당하게 잔다면 엄마의 구박과 잔소리가 날아올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난 방어적인 태세에 간밤에 엄마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하겠지. 그러면 엄마는 또 다시 내게 요란한 쾅-소리를 내며 마음의 철문을 꽉 닫아버리는 제스쳐를 취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방구석 의자에 담요를 깔았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 집안 이곳 저곳을 쓸고 닦고 정리했더니 마음이 너무 개운하고 뿌듯하다는 엄마에게, 당신의 일을 마음이 흡족하도록 해내어서 뿌듯해하시는 그 마음에 어찌되었던 작은 조약돌이라도 던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처음 읽었을 때, 그렇게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좀 쉬지, 왜 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바다로 나가셨을까, 그리고 어차피 허망하게 될 걸 왜 끝까지 애쓰셨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노인에게 그 물고기는 재물적 가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성격의 딸이기에 살갑고 애교섞인 말은 건네드리지는 못할 지언정 엄마의 바운더리를 최대한 해치지 않게 그 주변만을 조용히 살금살금 걸으며 노력한다는 것을, 아마 엄마는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활률이 높겠지. 이렇게 문득 찾아온 엄마 삶의 생경한 모습이 조금은 아니 사실은 제법 많이 혹스러우면서도 이내 수긍이 가면서 어렵지 않게 마음이 정리된 것 같다.



올 해 여름 주립공원에서. 수영을 너무 사랑하는 큰 댕댕이와 놀아주기 위해 엄마도 같이 호수에 저벅 저벅 들어가심.



어쩌다보니 어째 모양새가 멀쩡한 내 집 놔두고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현재 상황. 지지고 볶고 때로는 실망하고 화내고 싸우더라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내 엄마인 만큼, 이 변화를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에도 겁내지 말고 잘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사,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내 일기장에 더해진다. 더불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꿈꾸어왔던 엄마의 반년간의 한국 생활이 좋은 경험과 좋은 사람들로 꽉꽉 채워지도록 도움을 구하는 기도도 함께. 




이어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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