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언론, SNS 등 어떤 사건에 대해 다루는 매체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로 인해 잘못된 정보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정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놓거나, 바라보고 싶은 대로 바라본 편향적 시각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고를 ‘과도한 일반화’라고 할 수 있으며, 정보를 인식할 때 매우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을 보고 ‘요즘 애들은 다 저래’라고 여기는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른들은 다 저래’하는 식이다. 일반화가 난무하는 시대 앞에 일반화의 특징을 발견했다. 일반화는 ‘편 가르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과 어른의 예를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의 무리’가 형성되어 어른을 일반화한 것, ‘어른의 무리’가 형성되어 학생을 일반화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과도한 일반화에는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리는 그러한 일반화를 ‘기다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2500년 전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부분을 매우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미 말했듯이, 금언은 일반적인 선언이고, 청중은 자신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갖게 된 단편적인 생각을 누군가가 일반화해서 말해주면 좋아한다. 예컨대, 나쁜 이웃이나 힘들게 하는 자녀를 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그 앞에서 “이웃보다 더 골치 아픈 게 없어요”라고 말하거나, “자식 기르는 것보다 더 쓸데없는 일이 없네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런 말을 전적으로 수긍할 것이다. 따라서 연설가는 청중에게 어떤 생각이 있는지 알아내서, 그 견해를 일반화해서 언급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아리스토텔레스/현대 지성, 2021)
언어를 포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모습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계속된다. 그것은 ‘자기편’을 만들기 위한 ‘편향적 시각’에 불과하다.
일반화 : 개별적인 것이나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됨, 또는 그렇게 만듦.
어떤 사실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틀의 역할이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특수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현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일반화를 정당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일반화 오류의 역설이 주는 교훈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일반화는 정당화하면서, 반대로 불리한 일반화는 일반화라고 치부하는 현상을 마주한다. 다시 말해 ‘자기편’이라고 생각되면 ‘합당한 보편적 사실’이고 그렇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는 일반화’라고 화를 내는 기이한 일이다.
과도한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말과 글을 돌아보니 정작 편을 가르는 일반화를 양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경계하는 것 같지만 정작 ‘일반화를 기다리는 시대’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