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글을 ‘많이’ 쓰지 못했지만 ‘꾸준히’ 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글을 다양한 방식으로 쓰려고 노력하며, 지금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했다. 지금은 무작정 많이, 다양하게 쓰는 것에서 더 나아가 듣고, 또 듣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듣는 것을 하지 못하면 아마도 계속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글에 아무런 발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반면 검토자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검토자의 지적에 따라 새로운 분석이나 실험을 진행해 논문을 수정하거나 특정 섹션을 다시 작성해 편집장에게 보내는 기회를 얻게 된다. 수정한 원고를 보낸 후에도 지적 사항이 있으면 이를 또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더 반복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 몇 개월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사이언스 픽션』
위의 내용은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될 때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수정’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정’이다. 어쩌면 과학이라는 학문이 말하는 ‘진보’는 수정되는 과정을 뜻할 것이다. 멈추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수정되는 과정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동료 평가다. 검증의 과정을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서로 듣지 못하면 학문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수정을 거치고 승인된 논문에서도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기 때문에, ‘계속 들어야’ 한다. 즉 들음에는, 수정에는 끝이 없다.
글쓰기에서 유익한 피드백으로 당신의 글을 멋지게 만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은 당신의 실력이 나아지도록 몰아붙여 줄 스승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
<뉴욕타임스>의 편집장이 되기 전 저자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배운 것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실력이 나아지도록 몰아붙여 줄 스승만큼이나 피드백을 통해 멋지게 만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문은 사실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가장 간결하고, 정확해야 한다. 저자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근무할 때, 당시 편집장은 글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고 한다. 필요 없는 표현을 삭제하고, 또 삭제했다는 말이다. 수정은 더 나아지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본래의 목적 안에서 ‘단순’할수록 좋다. 반복되는 표현, 또는 필요 이상의 표현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즉, 들음은 수정과 같은데 수정은 버릴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수많은 것을 신경 쓰고 있는 사람에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 ‘들음’에서 나온다.
우리의 목표는 글을 ‘잘’ 쓰는 데 있는 게 아님을 다시 새기고 간다. 합평의 목표는 ‘잘’ 듣는 데 있다. 더 겸손한 자세로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 -『울면서 쓰는 용기』
제주도 여행 갔을 때 독립서점에서 『마음을 울리는 사람』을 샀다. 그 책의 저자가 국어 교사를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고 합평 수업을 통해 나온 글을 묶은 문집이 『울면서 쓰는 용기』다. 문집을 마무리하며 저자가 쓴 글이다. 어쩌면 글을 잘 쓰는 방법은 잘 듣는 데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잘 듣지 않은 것에 있다. 일방적으로 나의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나의 것을 내려놓고 들음을 통해 나의 것을 쓰는 것이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닐까 싶다.
듣는 것에 집중할 때 써야 할 것이, 쓰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