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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Oct 13. 2022

낯선 것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바꿔 말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익숙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언제부터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어릴 때의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동으로 자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낯설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람을 피하며 혼자 있는 것에 빠져들었다.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이렇게 소리쳐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내 몸을 만지려고 하면' 소리치며 주위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지금도 이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많은 사건 때문에 이런 교육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조금 더 커서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언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릴 때 이야기로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낯설다'고 인식하며 속으로 '싫어요, 안돼요, 제발 누가 도와주세요'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품게 되면, 오히려 내게 독이 된다. 내가 그랬으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든,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이든, 곧 낯선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나의 시선은 여전히 유치원 7살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낯설다 :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세상은 언제나 낯설다. 낯선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내 마음 가운데는 언제 어릴 때 받았던 교육,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익숙지 않은 것, 눈에 익지 않은 것은 시선을 조금만 틀면 전혀 다른 것으로 펼쳐진다.


'낯섦이 아닌 새로움'


 낯설다고 여긴 것을 새롭다고 느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는 모습이 따듯한 손길로 느껴질 것이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매우 가벼울 것이다. 낯섦의 인식에서 새로움의 인식으로 전환할 때다. 언제까지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까.


새롭다 :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다.


 낯설다고 여기는 경계태세에서 새롭다고 여기는 열린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생생'하게 다가올 것, 곧 살아있음이 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낯선 것, 낯선 사람이 아닌,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그 걸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좋아요! 고마워요!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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