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말고 직면

'지금 이 순간'

by 앤틱

부끄럽지만, 카페 알바 2주 차. 사장님과 서로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그 덕에 스스로의 약속, 있을지 없을진 모르지만 글을 읽을 독자들과의 약속을 부드럽게 어겼다.


알바 경험이 7년이나 되었고, 나름대로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다 보니 단단히 착각했나 보다. 첫 알바 경험 덕분에 늘 '그 알바보다는 어렵지 않지'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런 생각은 위험한 자신감이 된 듯했다. 카페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나를 뽑으셨다. 집도 가까웠고, 나의 태도를 높게 보셨다고 하셨다.


최근에 연속된 경험들은 도망이었고, 회피였다. 도망도, 회피도 어쩌면 습관일지 모르겠다.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사랑도 얻었고, 바닥도 쳤으며, 여러 방면으로 방황했다. 향후 방황까지 땡겨쓴 느낌이랄까. 정말 여유로움 따윈 없는 '조급한 한 해'였다. 그 방황을 끝내고, 학교에 복학도 하겠다, 여행을 다녀오며 시작도 좋고.. 집 앞에 내가 원했던 카페 알바도 구했으니 상황이 좋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좋다는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그러니까 긍정적인 것에만 빠져있다 보니, 늘 긍정과 부정은 서로 티키타카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까맣게 잊어버렸다.


스케줄 관련해서 사장님과 나의 입장차이가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일방적으로 내가 혼나고 끝냈겠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나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알바를 했다며 안심했고 좋아했던 내가, 알바를 가기 싫어졌다. 작년 한 해 동안 해왔던 회피와 도망의 경험 덕에 또 스멀스멀 내 일상 위에 나타나버렸다. 그리곤 다음 날 출근 전까지 무기력하게 보냈다. 아니,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무리스럽게 성실했다.


늘 미래와 과거에 정신이 가있는 나, 그러니까 남들보다 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 못했던 나는, 이런 나를 너무나 고치고 싶었다. 매번 고치는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고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인지했고, 노력했다. 그 노력들이 점차 내 스킬이 되어가는 듯하다. 어차피 출근을 해야 하니, 출근을 했다. 들어가기 전에 잘릴까 봐, 또 다른 알바를 구해야 할까 봐, 사장님의 시선이 두렵긴 했지만 예전의 나보다는 그것을 무디게 다뤘다. 들어가자마자 인사했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마감까지 쭉 집중했다.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롯이 음료 제조에, 마감에 집중했고 일이 끝났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니, 홀가분했다. 출근 전 날린 시간들이 아까웠지만, 그 날린 시간덕에 일을 마치고 났을 때 기분이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생애 첫 스파링에서 그 느낌을 직접 경험했다. 내가 점수를 땄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냥 스파링을 했을 뿐. 그런데 ‘이기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동작은 급속도로 둔해졌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 가> 크리스 나이바우어


카페에서 일을 하는 와중 주문이 들어왔다. ‘자 잘 만들어 보자!’라며 호기롭게, 거창하게 시작하기보다는 그냥 영수증을 봤다. 영수증에 적힌 음료의 레시피를 찾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만들어 제공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을 살았다는 의미다.


영화관에서 2년 간 일을 하며, 일 숙련도에 대한 걱정 없이 일을 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주문이 많이 들어와 멘탈이 터질 때 어떻게 했었지를 돌이켜보면, 카페에서 겪었던 순간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당장 앞에 있는 주문 내용을 본다. 가능하다면 2개 이상의 메뉴를 준비해 본다. 그러던 와중에도 길을 잃는다면, 다시 하나로 초점을 맞춘다. 상영관 청소도 그렇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상영관 청소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상영관 청소의 일은 다음 단계의 나에게 넘겼다. 다음 단계는 다음으로 넘기기를 자연스레 터득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일을 잘한 건지, 일을 잘하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인지는 정확하게 말하진 못할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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