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는 없었다.
매번 테이크아웃 해갔던 커피점에 알바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지만 역시 걱정사람답게 출근 전 긴장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7년간 여러 알바를 해왔음에도, 첫 시작은 늘 걱정된다. 긴장되고 걱정되었지만, 절반은 설렘이었다. 그 설렘으로 이 알바를 만만하게 바라보지 않게 주의 좀 하자.
나보다 더 낯을 가리는 듯 해보이는 알바생 두 분에게 안내를 받았다. CGV 두 군데의 지점에서 도합 2년 간 일을 하며, 소위 일을 잘한다고 목소리를 들어왔던 나. 그런 근거에도 긴장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근거 때문에, 첫날부터 일을 잘해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나. 뭐, 그런 긴장과 욕심 덕에 진짜로 일을 잘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앞치마를 두르는 데 당황했다. 실은 왼쪽 끈이 끊겨서 두르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냥 그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나. 당황해하는 모습에 당황했다.
두 명의 알바생도 알바를 시작한 지 1~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 두 분 다 다른 카페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여유가 보였다. 아니, 사실 나는 습관성 존경이 있다. 그냥 먼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멋지고 존경스럽다. 이 습관은 내 인생 첫 알바부터 시작되었다. 19살 12월에 시작한 패스트푸드점 알바.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스타팅 알바생들이 있었다. 1~2개월 정도 더 빨리 일한 정도. 습관성 존경 덕에, 나는 그들을 다 나보다 형, 누나로 바라보는 실수를 범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다수가 나와 동갑이었다.
이렇게 되돌아보더라도, 한 달 정도는 적응기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당연, 그래서 미래의 내 모습이 걱정되는 것도 당연, 실수를 하는 것도 당연, 그에 따라 욕을 먹는 것도 당연. 최소 일주일만 다니더라도 지금 모습과 다른데 욕심이 지나치다. 7년 간 알바와 군생활을 하면서, 당연한 사실임을 수없이 겪어왔는데도 막상 첫 시작 때는 늘 간과한다.
첫날이라 마감에 들어갔다. 마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체적인 흐름만 파악한 게 전부다. 다 기억 못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도 7년간 여러 알바를 해왔기 때문에, 그래도 남들보다는 약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기대뿐이다. CGV에서 이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마감도 결국 적응해 냈다. 그리고 마감멤버로서, 같은 알바생과 매니저에게도 신뢰를 받으며 해냈다. 두려울 때마다, 걱정될 때마다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잠시 두려움 및 걱정과 멀어지자.
아, 유튜브에 미리 커피 추출법, 우유 스팀 치는 법을 여러 번 보고 갔는데, 나중에 배울 듯하다. 그것보다 먼저 익혀야 할 부분이 많다. 그래도 걱정 때문에 미리 봐왔던 행동들이 분명 나의 적응을 도울 것이다.
가끔은 내려놓겠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경험을 뽑고 뽑아 먹겠다.
평일 마감 시간대에 주문은 정말 적었다. 3건이랄까. 그리고 폭풍처럼 쏟아진 점장님의 말을 듣고(거의 듣는 척 수준이었다) 보낸 첫 출근. 그리고 잠에 들기 전, 가능한 레시피만 외워봤다. '커피', '라테', '500ml 음료', '에이드' 네 가지 카테고리만 일단 마스터해 보자. 그리고 네 가지 카테고리 안에 메뉴 개수부터 외웠다.
'커피' 10개
'라테' 11개
'500ml' 7개
'에이드' 6개
최근에 영어공부를 하며, 알게 된 공부법을 적용해 봤다. 큰 범주부터 세부적으로. '레시피' -> 커피, 라테, 500ml, 에이드 -> 커피 개수, 라테 개수, 500ml 개수, 에이드 개수 -> 커피 레시피, 라테 레시피..
이런 식의 단계랄까? 그렇게 커피 레시피까지 외웠다. 사이즈업 레시피도 외워야 했지만, 그것은 기본 레시피를 파악하고 나면 손쉽게 외워질 것 같아서 패스했다. 무엇보다 첫날인데? 그리고 잠에 들었다.
바로 다음 날. 평일 미들 시간에 들어갔다. 출근 직후 잠시동안 오픈 알바생분, 점장님, 나 이렇게 셋이서 일을 했다. 오픈 알바생분이 퇴근을 한 뒤에, 귀신같이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정말 정신없었다. 실수도 많이 했다. 점장님에게 욕도 먹었다(사실 욕이라기보단, 피드백에 가까웠다). 늘 겪지만, 늘 적응할 수 없는. 하지만 꼭 거쳐야 하는 '영혼 뺏기기'의 시간을 버텨냈다.
레시피를 외워갔었지만, 막상 주문이 들어오니 외웠던 레시피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를 거쳐야, 결국에는 진정 '기억'이 된다. 지금 돌이켜봐도, 모든 일에서 이런 과정을 겪었다. 영어 공부도 똑같다. 회독을 거치며, 외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손 끝에서, 입술 끝에서 턱턱 막힌다. 그러면서 외웠던 것이 의미 없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착각을 넘어서고, 다시 들여다보고 결국 막히지 않게 내뱉고, 써내는 순간 진정 외워진다. 이렇게 된 이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냥 반복에 반복이다. 인생은 반복이다.
영혼과 에너지를 뺏긴 뒤, 여자친구를 만나 시간을 잠시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정말 정신 놓고 잠에 들었다. 이렇게 잠에 들면, 어제와 오늘 겪은 일들이 내 안에 남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경험에 근거해서, 두려움과 걱정을 몰아내고 자신감을 가지되, '나는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라는 말처럼,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태도'만 유지한 채로 첫 일주일을 무사하게 보내고 싶다.
확실히 마감(저녁 6시) 시간대에는 여유로웠다. 꽤 주문이 들어오긴 했지만, 점장님이 같이 계셔서 안심됐다. 나도 빨리 적응해서, 혼자 바쁜 주문을 쳐내는 수준까지 되고 싶다. 하지만 전반적인 적응이 먼저다.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세 번 정도 씻는다. 통 내부를 씻을 때, 물을 넣고 세 번을 기준으로 흔들어 씻는다. 베란다 바닥 청소를 할 때, 물을 뿌리고 스퀴지로 물을 닦는다. 이 또한 세 번 반복하면 슬리퍼에서 나오는 것 포함, 구정물이 없어진다. 야구도 스트라이크 세 번이 아웃이다. 쓰리아웃이, 공수전환이다. 세 번째 출근이라 심적으로 여유로웠다. 가장 기본인 커피류를 외운 덕분에, 보조 역할을 무사히 수행했다. 점장님이 똑똑하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앞으로 '세 번'을 기준으로 삼아야겠다. 적어도 세 번은 출근해야, 불안정한 마음이 안정궤도로 들어간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출근이 남았다. 둘 다 마감시간이다. 첫 주의 목표는 바 담당 마감 숙지하기. 그리고 다음 순서는 설거지 마감, 마감 정산 정도가 있겠다.
마감은 세 번째다. 적어도 3번은 해야 머리에 큰 흐름이 잡히는 듯하다. 일요일에 마감 출근을 하고 나면 더 익숙해지겠지만, 여기서 다음 단계는 '혼자'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해보며 실수도 해보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들어봐야 나아진다.
계속해서 레시피를 암기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서툴다. 카페라테를 돌체라테로 잘못 만들었다. 그럼 이젠 카페라테를 돌체라테로 착각하는 일은 없겠지. 저번에 한번, 점장님이 알바생들을 위해 토스트를 만들게 해 주셨다. 맛도 보면서, 또 우리가 직접 만들어봐야 다음에 혼자 만들 수 있기 때문이겠지. 이는 효과가 있었다. 오늘 포장 주문이 들어왔고, 한번 만들어봤기 때문에 혼자 토스트 두 개를 만들었다(물론 재료는 다른 분들이 준비해 주셨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니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암기+아웃풋. 둘 은 붙어 다녀야 되는 베스트프렌드라는 것을 또 한 번 더 깨달았다.
대학생 동기와 카톡을 나눴다. "집 앞에 카페 알바도 구했고, 이제 복학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같이 힘내보자고". 이 대화를 나누자마자 변수가 생겼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패스트푸드, 난방시공알바, CGV, PC방, 의류배달.. 여러 가지 알바를 해왔다. 패스트푸드와 CGV는 스케줄제, 나머지 알바는 다 고정된 시간이었다. 스케줄과 고정된 시간은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지금 카페 알바는 스케줄제다. 보통 한 달 단위로 스케줄을 짜주시는데, 이번에는 3명의 알바생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일단 이번 주 스케줄부터 알려주셨다. 그래서 3월 개강 전, 내 개인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보통은 알바 스케줄에 맞게 내 일정을 잡았었다. 그리고 2월 마지막주를 제외한 3주간의 스케줄이 나왔다. 주 5~6일 정도 근무를 하는 데다가, 알바 인원도 많지 않아서 스케줄을 바꾸기가 힘들었다. 오픈은 내가 경험이 없고.. 하지만 일정 때문에 스케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왔다.
집에서도 가깝고, 비교적 해본 알바 중 난이도는 가장 쉬운 것 같다. 그래서 좋았다. 그렇게 안정된 마음을 가지자마자 바로 변수가 생겼다. 긴장을 놓지 말라는 건가..? 스케줄 조정은 실패했다. 복학하고 나면,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할 텐데 그땐 어떡하지?
그래서 다시 CGV로 복귀를 생각해 보았다. 복귀가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일 할 때 주문이 밀려왔고 변수가 많이 생겼다(물론 나보다 일을 먼저 시작한 다른 알바생분들 덕에 쳐낼 수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CGV도 힘들었다. 힘들어서 그만뒀다. 불과 한 달전쯤에 단기 알바로 다시 CGV에서 했었는데, 그때 나는 '다신 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미화를 해버리는지 참.
카페 알바를 하면서 하는 고찰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시간에 휩쓸려서, 연재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결국 일기 같은 글을 써버렸다. 여유롭게 퇴고도 하려고 계획했었는데, 퇴고는 한 번도 못한 채 첫 글을 써야 할 판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사람도 알 수 없다. 나 자신도 알기 어렵다. 나의 기상시간 컨트롤도 버겁다. 그래도, 카페 알바를 시작하며 이것을 글감 삼아 브런치북을 연재하려 마음을 먹었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