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하는 노력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끈기가 없다고 했다. 끈기가 없는 것이 나의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끈기가 없는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갔고 잡지식이 풍부했다. 뭐든 중상위권 수준이라, 게임에 있어서도 친구가 다양했다. 보통 게임 하나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워낙 수많은 게임을 접했어서 '서든어택 친구', '롤 친구' 등.. 거의 모든 게임 대화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보다 잘하진 못했지만, 항상 그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나의 특성은 게임뿐만 아니었다. 어릴 때 즐겨하던 네이버블로그도 주제를 3번이나 바꿨다. 메이플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IT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인크래프트를 주제로 했었다. 모두, 일일 방문자수 5,000명은 넘겼었다. 그렇지만 하나를 오랫동안 지속한 기억은 없다. 뭐든 그랬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끈기를 가지라 말했다. 웃긴 건, 그런 모습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다양한 일을 잘한다. 뭐든 혼자 알아보고, 다 어느 정도 수준이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디테일은 부족하다. 하지만 정말 뭐든 알고 있다. 나에게 끈기를 가지라 말한 것도, 당신과 너무 닮았기에 그런 게 아닐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사업아이디어와 행동력 하나는 엄청나셨는데 항상 끝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귀가 얇으셔서, 잘하고 있던 사업도 접고 다른 사업을 펼치셨다고 한다. 의미가 없지만 잘되던 사업을 쭉 유지했더라면.. 나는 꽤 부잣집 자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농담으로 "그랬다면 너는 안 태어났지"라고 말씀하셨다. 어쨌든, 끝맺는 능력이 부족한 게 나의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학창 시절, 공부에 관해서도 이야기할게 꽤 있다. 일단 저번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수학 성적이 전교권이었다. 10등 정도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아쉬운 것이, 기말고사 시험을 적당히 망쳤더라면 한자리 성적을 거뒀을 텐데, 나의 끝맺음 DNA는 이때도 발동했다. '이만하면 됐다'며 기말고사 공부를 던졌다. 아마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성적이 나왔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후회도 했다. 처참한 기말고사 점수에도 불구하고 10등이니까 말이다. 정말 의미 없는 말이지만 만일 기말고사까지 열심히 했다면..?
이것뿐만 아니다. 나의 재수생활의 결과는 전적으로 실력이 부족했고 공부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양한 원인 중에서도 끝맺음이 너무 허술하고 별로였던 것이 가장 컸다. 공부와 거리가 멀던 내가 고등학교 한 학기 수학 성적이 높았다고 눈이 높아졌었다. 그렇게 내 수준에 맞지 않은 목표가 생겼고, 누구나 그렇듯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재수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있어서 공부 습관은 정말 고등학생 1학년 그 1년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자시간에 2~3시간 수학 숙제가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주제도 모르고 재수를 선택한 거다. 수험생이라면 정말 적어도 하루에 6시간 이상은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습관도 경험도 없던 내가 재수라니. 아버지는 반대했고, 그래서 누나의 도움을 받아 돈을 빌려 재수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땐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그때 내가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임을 안다.
나의 재수생활 패턴은 이랬다. 한 달 공부 열심히 하고, 교육청이든 뭐든 모의고사를 본다. 성적이 꽤 잘 나온다. 그 순간, 시험을 치르고 한 달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망치고, 또 정신 바짝 차려서 공부를 한 달간 열심히 한다. 이렇게 패턴을 반복해서,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인 10월 모의고사를 정말 잘 보았고, 내 목표 대학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전 모의고사들은 수능과 전혀 다른 게임이지만 말이다. 10월 모의고사를 본 후, 마지막에 더 힘을 내 집중했던 게 아니라 힘이 쭉 빠졌다. 수능을 치른 것 마냥, 수능 끝나고 무엇을 할지가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수능은 처참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준비한 나의 세 번째 수험생활을 보면, 고등학교 때 야자시간에 꾸준히 숙제를 한 것처럼 군대에서 4개월 간 야간연등 2시간은 꼭 공부했다. 그리고 수능 전 10일 정도를 휴가를 냈다. 이때의 나는 끝맺음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력의 질을 떠나 '일단 끝까지 뭐든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공부했다. 그 마음가짐이 무언가 차이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 덕분일까, 그렇게 부족한 공부 시간에도 세 번의 수능 중 가장 성적이 좋았다. 물론 누구에게 성공적인 점수다라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 부끄러운 점수들 중에서도 마지막 수능 성적이 가장 좋았다. 아마 조금이라도 '매일 꾸준히' 와, '끝까지 붙잡고 있는 태도' 덕분이 아니었을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그 친구와 같이 공부하던 친구의 경험도 재밌다. 나의 친구는 9월까지 과학탐구 1과목을 공부하지 않았다. 늘 공부하고, 잘해왔던 나머지 탐구를 망치고, 9월부터 수능 때까지 몰입한 그 과목이 1등급이 떴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도, 9월까지 게임만 하다가 나머지 기간에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둘은 비슷한 대학을 갔고, 내가 봤을 땐 성공적으로 수험생활을 끝마쳤다. 다양한 차이점이 있겠지만, '끝까지 해보는 태도'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니었을까.
나의 여자친구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 나와 큰 차이점이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여자친구는 두 개의 자격증을 준비했다. 준비할 때마다 상황상 시간이 촉박했다. 이런 상황에 나였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이 부족하니까 시험 일정을 다음으로 미루고 계획을 제대로 세워서 수행해 보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여자친구는 달랐다. 정말 너무 시간이 부족함에도, 잠을 줄여가며 몰두했다. 물론 스트레스는 받았지만, 그렇게 남들은 한 달 이상 걸리는 자격증을 1~2주일 만에 취득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에게 없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를 보더라도, 이론상으로 전반전과 후반전은 동일하게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후반전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임팩트 있고 기억에 남는 경기들은 후반전에서의 집중력차이로 만들어졌다. 앞서나가고 있더라도 후반전에 집중력을 놓는 순간 역전을 당한다. 역전당한다는 의미는 승자와 패자 둘 다에게 극단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승자는 엄청난 도파민과, 팬들의 환호, 그리고 멋진 스토리가 남는다. 하지만 패자는, 온갖 비난을 받는다. 다른 패배와 다르게 역전을 당한다면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받는다. 가령 '정신력이 쓰레기다'는 식이다. 어찌 보면 억울하고 불공평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나는 인생에 많은 부분에서 후반전에 집중력을 놓았다. 수많은 역전을 당하고, 패배했다.
야구에서도 평균적으로 6이닝 정도 많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그렇다. 하지만, 정말 그에 비해 적은 공을 던지고 길어야 2이닝 정도 던지는 마무리 투수도 선발투수 못지않게 중요하고 인상 깊다. 1~8회에서 잘 버텨온 경기가, 9회 1이닝을 망치면 의미가 없어진다. 그 덕에 '야구는 9회 말까지 모른다'는 말이 생긴 게 아닐까.
나의 이런 특성이 너무나도 밉다. 수없이 반복되기에 자책하게 된다. 의지 부족인 것인지, DNA에 새겨져 바꿀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몰두하고자 하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 책임질 게 없으니 그런 건지, 나약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사소한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할까? 쌓아야 한다면 얼마나 쌓아야 할까? 나는 진짜 여태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인가? 타인과 비교는 의미 없다. 비교는 애초에 어리석다. 우리 개인은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다. 가족, 지인, 학교, 자본 등.. 상황이 다른데 왜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가? 불공평한 상황인데 왜 공평한 잣대로 비교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와의 비교를 통해 나아가야 하고, 나아져야 한다.
나는 다른 시간에 존재했던 과거의 '나' 들이 만들어둔 결과를, 내 능력 부족으로 망치기 싫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능력 있고 든든한 마무리 투수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