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by 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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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26년 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의지(意志)

1.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2. 선택이나 행위의 결정에 대한 내적이고 개인적인 역량

3.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내적 욕구. 도덕적인 가치 평가의 원인도 된다.


나 스스로가 나를 평가했을 때, 단점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의지부족' '의지박약'이다. 이 단점이 나만 생각하는 건지, 타인들도 생각하는 단점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의지가 강했던 순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의지라는 단어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 한순간은 생각이 나긴 한다. 러닝을 한창 뛸 때, 정말 의지 없이 습관대로 격일로 뛰고 있었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며 매번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었다. 그때, 한번 1시간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km를 뛰고 싶었다. 그때, 정말 힘든 와중에도 1시간 완주를 하자고 참고 뛰었던 그 순간, 의지력이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사소한 순간 말고는, 사실 떠오르는 경험은 없다. 담배도 의지력 있게 끊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끊었고, 좋아하던 게임도 정말 어느 순간 하지 않게 되었다.


군대에서나, 알바에서 늘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며 일을 했기 때문일 거다. 근데 그것마저도 나의 의지력 때문이 아니었다. '내 이미지를 최고로 만들겠어!' '이 집단을 더 발전시키겠어!' 따위의 의지는 없었다. 분명, 1년 정도 전까지 그냥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고, 내가 그러지 않으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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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기억. 어리기에 당연했지만, 그때도 무언가 내 의지는 없었다. 내 쾌락과 흥미에 따라서, 집안에 돈은 없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하고 싶은 놀이들을 하며 지냈다. 내 인생을 위해 공부를 한다든가 이런 고민 따위는 없었다. 게임을 해야지! 야구를 해야지!라는 의지도 없었다. 그냥 눈이 떠지면 놀았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그런 쾌락과 흥미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어릴 때만큼 설렘을 주고 충만함을 주는 행위들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몰입 했던 게임들도 그때만큼은 아니었고, 야구랑도 멀어지고.. 블로그도 접었고. 굳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딱 유튜브가 우리의 삶에 들어올 때였다. 마크를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유튜브를 하고 싶었다.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고 많은 블로거들이 유튜브로 넘어갔었기 때문이다. 돈을 번다든가, 그런 따위의 목적이 아니었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나의 설득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부모님은 공부나 하라며 컴퓨터를 사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비싼 컴퓨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물론, 사정이 좋진 않았다. 그래서 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게임을 할 때 렉 걸리지 않는 방법을 검색하는데 시간을 더 썼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기억을 미화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부터 내 흥미를 이끄는 것은 없었다. 집안 사정도 더욱 안 좋아졌고, 그렇게 방황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1학년이 되었다. 그냥 동네친구들이 다니니까 같이 놀기 위해 다니던 수학학원이 나의 학원의 전부였다. 고등학생이 된 만큼, 야자를 강제적으로 하게 되었고, 야자는 보통 저녁 7시 이후에 하기 때문에 자기에도 애매했다. 사실, 그전 수업들에서 잤으니 더 잘 수 없었겠지. 어쨌든, 눈을 뜬 상태로 2~3시간가량 보내야 했고, 폰을 마음 놓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수학 숙제를 했다. 이때도 시험 성적을 잘 받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할까 하다가 선택했던 게 학원 숙제였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수학'은 열심히 하는 친구로 봐주었다. 그렇게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쳤는데, 열심히 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뭐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장난 섞인 조롱이, 나를 자극했다.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타인들에 의해 '수학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조롱을 받지 않으려면 성적이 잘 나와야 했다.


나의 자존심이 긁혔고, 내 의지력을 발동해 더욱 열심히 해서 높은 수학 성적을 받아냈다.. 는 것이 보통 예상하는 바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조롱에도 사실 딱히 의지는 없었고, 그냥 매번 하던 대로 야자 때 수학 숙제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게 2학기 때도 지속된 거다. 정말 야자 2시간.. 그 순간에만 숙제했다. 매일매일. 주말에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고, 방학에도 수업 때는 집중 안 하고 자습 시간이 주어지면 숙제만 했다. 그 교실이라는 공간 이후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와 비교되게, 그때 가장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나보다 성적은 높았지만 나처럼 자존심이 긁히는 경험을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보았을 때 그 자존심 때문에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했고, 그렇게 어느 순간 우리 학교의 상위권이 되더니 최상위권이 되어 자기가 만족할 만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어쨌든, 이 친구와는 달랐다. 의지력은 없었다.


웃긴 것이, 의지력은 없었지만 야자 때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숙제를 했고, 2학기에는 결과가 좋았다. 이때도 똑같이,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자습은 없었다. 오히려 뒹굴뒹굴 거리며 놀았다. 그런데, 전교 10등이 되었다. 심지어 끈기가 부족한 나의 특성 때문에 기말고사 공부가 하기 싫어서 기말고사는 망쳤었다. 그래서 40등이나 하면 좋겠다 했지만, 전교 10등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수학은 전교권이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자연스레 대학을 잘 가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의지를 발동해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발악했다. 근데 정말 의지 있게 하려고 한 그 자체가 문제일까? 공부는 다시 뒤로 두고, 의미 없는 게임을 하며 보냈다. 매주 의지 있게 행동하긴 했다. 월요일, 화요일은 열심히 공부하다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게임을 하며 회피했다. 그리고는 다시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월요일 화요일 공부.. 수요일~일요일 게임.. 이런 시간이 계속 반복됐다. 의지력을 발동하면 발동할수록 행동하지 않았고, 별로 있지도 않은 의지력은 바닥났다. 아니, 애초에 나에게 의지란 존재하지 않은 개념인데 사용하려고 했으니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의지와 계획 따위는 던져두고 고1 때처럼 매일 야자 때 순간만큼만 공부했다면. 첫 수능을 그만큼 망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순간에 있는 것 같다. 매일 순간에 집중하는 것을 쌓지 않고, 계속 계획을 세우려 하고, 무언가 긴 시간 확보를 하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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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첫 수능을 망치고, 의지 있게 도전한 재수도 망치고, 그렇게 군대를 가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중간중간 '의지'를 발동하긴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운동을 하고자 의지를 발동했고, 공부를 하고자 의지를 발동했다. 나를 관리하고자 의지를 발동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였다. 정말 작심삼일의 연속. 아니 작심이틀의 연속.


군대에서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수능 공부를 준비해서 지금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공부를 하고자 수많은 의지를 발동했었지만, 웃기게도 고등학교 시절 야자 때 공부했던 것처럼, 밤 10시~12시에 공부연등을 신청해서 한 공부가 전부다. 나머지 시간에서는 부족한 잠을 채운다는 핑계로(정말 잠이 부족하긴 했다) 그저 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2시간은 꼭 공부했고, 일주일에 총 14시간. 4개월이니까 약 200시간이라는 정말 부족한 공부를 했다. 웃기게도, 재수 때 보다 성공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현실적인 최소 목표를 달성했다.


전역 후, 수많은 의지를 발동했었지만, 최소 3개월 이상 꾸준하게 했던 경험들은 모두 의지는 없었다. 격일로 꾸준하게 러닝을 뛰었었고, 헬스를 4개월 동안 매주 4회 나갔었다. 물론 지금도 깔짝깔짝 하고 있긴 한데..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는 1년 이상 정말 즐겁기 때문에 지속하고 있다. 모두,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의지 있게 이미 독서 글쓰기를 하고자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였다. 러닝과 운동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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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써보니, 정말 나에겐 의지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의지력을 발휘하자고 할수록 그것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분명 월, 목, 토 연재를 하기 때문에 미리 글을 쓰자고 생각하고 계획했었다. 첫 글은 너무 주제도 없고,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브런치북을 구상하고 주제를 정해서 글을 써보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기 싫어졌고, 미루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계획은 없었다. 병원 진료를 보러 나와야 했고, 알바를 가기 전 카페를 가자는 생각만이 있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였고, 책상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왔다. 연재는 해야 하니까, 나는 작가가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스톱워치를 켜서, 정말 짧게 '의지'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자 하고 지금 40분이 넘게 글을 쓴 거다.


한번 내 인생을, 의지라는 주제로 성찰해 보니 나 자신에게 '왜 이렇게 의지박약이니?'라고 혼내기보다는 그냥 '의지', '끈기', '생각', '계획'이라는 단어를 지워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 계속 질문해야겠다. 그 흥미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 글을 통해 돌아보니, 나는 여태 그렇게 행동했다.


또, 그냥 매일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1시간, 2시간씩 모여서 결과를 냈다. 큰 성과는 아니지만, 고1 수학 성적이라든지, 군대에서 본 수능 결과라든지.. 이 매일의 힘을 믿고 정말 그 시간만큼은 확보해서 매일 무언가 하는 행위들을 늘려간다면, 또 그 행위들을 지속한다면 어떤 결과든 나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흥미를 찾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그 흥미에 맞게 매일 조금이라도 지속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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