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

by 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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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基本技): 악기 따위를 다룰 때나 어떤 운동을 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


어디서든지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도 그렇고, 공부에서도 그렇고 어디서든지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사람들은 기본기를 간과한다. 기본기를 충분히 갈고닦아야 할 시간을 건너뛴다. 나 또한 매번 그런다. 그냥 하기 싫고, 그냥 스킵하고 싶다. 하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그것은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기본기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이다. 사소한 부분을 반복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전에 적용될지 잘 모르기 때문일까. 분명한 건 기본기를 간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서 발목을 잡을 것이다. 초반에 적은 시간만 투자하면 됐을 걸, 시간이 지나 기본기의 부재를 알게 된다면 두 배에서 세배정도 힘듦이 다가올 것이다. 사소하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재능이 있다는 것이 결국 기본기가 있다는 말이 아닐까? 재능이 없다면 '이 분야에서 기본기는 무엇일까?'를 질문하고, 그 기본기를 지루함을 견디고 1년 2년 많은 시간 동안 갈고닦아야 한다. 재능이 있다면, 기본기를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닐까? 아니면 남들이 지루함을 느낄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큰 에너지 들이지 않고 무의식에서 기본기가 알아서 탑재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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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에서 내가 수학으로 전교권 성적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현역시절과 재수시절, 수학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했다. 모든 과목에서 기본기는 중요하다. 수학에서는 더욱 중요한 듯하다. 기본기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명확하게 보인다.


나 같은 경우,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공부와 조금 가까워졌다. 그전에는 정말 나에게 공부라는 단어는 없었다. 나에게 시험기간은 그저 학교를 일찍 마치는 날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 중학생 때 터득했어야 했던 정말 사소한 부분들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단순 계산에서부터 시간이 걸렸다. 풀이과정이 조금만 길어져도, 계산 실수 때문에 문제를 많이 틀렸다. 그리고 난이도가 생기면 생길수록, 중학교 시절 도형 개념의 부재를 느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해서인지 중학교 개념을 잡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회피했다. 매 순간 불편함을 느끼고 나의 발목을 잡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니 실력이 나아질 리가 있나. 실력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능이라는 실전, 그 엄청난 긴장 속에서 기본기를 회피했던 행동에 대한 벌이 주어졌다.


어찌어찌 대학에 들어와서 나이가 들어 다시 중학교 도형을 공부해야 할 일이 생겼다. 정말 단순한 개념이고, 조금만 시간 투자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어린 시절 나는 그것을 회피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등학생인데 중학생 개념을 공부한다는 게 쪽팔렸을 거다. 그리고 뭔가 퇴보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그리고 책임지기 싫었나 보다. 시기에 맞는 공부를 하지 않은, 그 시간들에 대한 책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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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게임을 즐겨했다.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동물의 숲. 경쟁게임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비교 없이, 내 세계관을 구축하는 걸 즐겨했고 행복감을 느꼈다. 나의 집을 만들고, 만들기 위해 재료를 모으고, 빚을 갚고, 마을을 꾸미고.. 이런데도 중학교 때부터는 계속 '경쟁 게임'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아마 생산력 측면에서 게임을 바라봤기 때문인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건, 내가 행복하고 즐겁자고 하는 거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정말 즐거워서 했다. 경쟁게임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서부터는, 게임을 즐기지 못했다. 경쟁전.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과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이 있다. 여기서는 실력이 분명하게 정해진다. 나의 티어가 있고, 내 실력을 증명할 여러 가지 지표들이 있다. 어차피 같은 게임을 하는 거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임을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게 그래도 좀 생산력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도 나는 기본기를 무시했다. 그냥 생각 없이 실전에만 참여했다. 실전을 하면 어느 정도 기본기가 늘 수는 있다. 상위 단계에서 놀다 보면, 밑에 하위 단계가 저절로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한계가 있었다. 중상위권이 나의 한계였다. 경쟁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는 게임은, 결국 e스포츠다. 스포츠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게임과 공부라는 두 단어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에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개념이란 게 있다. 그게 기본기다. 맵 곳곳을 이해해야 한다. 캐릭터의 특성들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 상위권으로 올라가려면, 특성들을 더 디테일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게임일지라도 그런 일은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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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서도, 게임에서도, 축구에서도 나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지금 나의 삶에서, 필요한 기본기는 무엇일까?


아침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 매일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것은 힘들다. 시간을 정해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힘들다. 알바가 끝나고, 새벽에 집에 돌아와 야식을 참는 것은 힘들다. 작가라는 꿈을 위해 매일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은 힘들다. 매주 월, 목, 토 3일 연재하는 것은 힘들다. 매일 20분만이라도 영어공부하는 것은 힘들다.


힘들지만 그게 기본이다. 그런 기본을 이런저런 생각 없이, 이런저런 핑계 없이 묵묵히 해나간다면, 삶의 기본기를 갈고닦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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