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힘들다지만...

-진정 사랑한다면 기다림을 배우자...

by 최명진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힘들다지만

-이외수 사색상자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중~!




시골 친정집에 갔을 때였다.

한 방에서 엄마, 아버지, 남편, 정현, 성현이와 따끈한 구들에서 잠을 자는데 문득 떠진

눈은 도대체 닫힐 생각이 없는지 계속 까만 어둠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대로 누워서

뒤척이다 보면 옆에서 자는 울 엄마까지 깨우겠다 싶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전형적인 시골집의 툇마루를 거실로 개조한 까닭에, 넓은 공간의 찬기운이 일시에

몰려오면서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무엇이든 있는 것을 다 싸주려는 부모님과

내 궁색할 때만 이렇게 찾아뵙는 이기심이 나를 잠 못 들게 한 것일까?

문득 깊이 잠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




잠을 자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거실의 불빛 때문에 잠을 깰까 무서워 조용히 부엌으로

가방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만난 것은 바로 이외수 사색상자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이라는 책이었다. 작가 소개에 '번득이는 재치와 타고난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작가'라고 쓰고 있었다. 역시 그럴만하다 싶었다.

난 나의 판단력이나 논리력을 별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기보단 그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항상 넘기는 편이다. 누군가를

평가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니까... 하지만 그런 나의 맹함에도 불구하고 이외수의 책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노오란 표지의 책, 제목도

감성을 자극하기에 너무 좋다....





아들을 도움반에 들여보내고 학교 도서실로 발길을 옮겼다. 선생님도 만나고 아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서. 사서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큰아들 방과후 컴퓨터를 가르치시는 컴퓨터 선생님과의 즐거운 데이트~! 밖은 가랑비가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며 새싹을 부르고 있고, 나는 나의 잠든 감성을 부르고... 6권의 책을

빌려서 돌아오면서 걸음을 늦추고 사알짝 내리는 비를 맞았다. 좋다~~! 따갑게 때리지 않으면서 젖어 드는 그 느낌이~! 늘 울 아들에게 따가운 깨달음보다 내리는 이 비처럼

조용히, 촉촉하게 젖어 드는 깨달음을 얻게 하고 싶은데....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비에 젖은 감성이 오늘 아침 큰 소리를 냈던 나의 옹졸함에 일침을 가한다.




집에 돌아와 반납하려고 내어놓은 이외수 사색상자를 다시 펼쳤다. 책의 어여쁜 노랑은

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조금 더러워지고, 구겨졌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무도 터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첫 글로 나오는 '사랑의 국가대표'~!

'온 생애를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부지기수지만

온 생애를 바쳐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은 소유할 수는 없지만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란 말이 내 비에 젖은 내 맘을 두드린다. 난 사랑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는 비가 내리는 이유를

'가 뜩 이 나 외 로 운 그 대 가 슴 적 시 려 고.'

라고 쓰고 있다. 정말 그런가 보다. 문득 외로운 것도 같고, 슬픈 것도 같다.

내리는 비는 내 가슴을 적셔 무엇을 얻어내고픈 것일까? 친정에서 가져온 배추와 무,

들기름, 우리의 기본적 양식인 쌀이 내 머리 속을 배회하고 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

돌아와 전화드린다는 것이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럴 밖에...

마음에 걸리는 딸내미 가족 온다고 평소에 보시지도 않던 장을 보고 오신 울 엄마.

엄마가 내어주신 주꾸미가, 고등어가, 밴댕이가, 그 향이 낮게 오늘 내 맘을 적시고 있다. 역시 이외수다....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힘들다지만'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통은 쓰는 자의 몫이고 행복은 읽는 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난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외수란 작가는 고통스럽게 산고를 겪으며 이 책을

펴냈고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행복하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난 제목을 보면서 딴 생각을 했다. 아들을 통해 기다림을 배웠다 말하면서도 정작

왜 난 더 기다리지 못하고 말았는가에 대한 자책~! 사랑하는 일도 힘들고 기다리는 일도 또한 힘들다. 문득 어쩜 평생을 기다림의 연속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강박이 나를

한순간에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길지 않은 글이기에 다시 자유롭게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넘기며 오전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새색시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복지관에 반납을 하러 가려한다. 내가 이 책을 만나서

행복했던 것처럼 누군가 이 책을 만나서 행복하기를... 이 책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

사람에게 내가 이 책을 만나면서 흔들렸던 그 순간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가랑비는

온 하늘을 뿌옇게 덮고 있다. 재개발을 위해 빗속에서도 쉼 없이 돌아가는 포클레인

소리가 내 창문을 두드린다. 이젠 오늘 새롭게 만난 여섯 권의 책들과 또 행복한 나만의 몫을 챙기고 싶다. 글을 쓴 작가의 고통의 몫에 힘을 실어주고 나도 또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2009. 3. 13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들의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거의 책에 파묻혀 살았었다.

아들의 새학기 적응에 대한 불안함을 떨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또한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미친 듯이 읽고, 불안한 내 마음을 다독였던 그 시간들...

결실의 계절 가을에 다시 이 글을 만나는데도 그때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어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





20150906_165718.jpg
20150906_165848.jpg
20150906_180243.jpg
20150906_181057.jpg
20150906_184019.jpg 아들과 함께 했던 미술관 관람~~~ 그 길에 만났던 감성의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