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료교육 때문에 대전에 이사 온 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흘렀다.
아이 때문에 참 마음 고생도 많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누군가 말하더이다.
"자신의 손 끝에 박힌 작은 가시가 남의 커다란 아픔보다 더 아프다."고.
정말 이해가 가는 말이고, 살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만의 문제에 심취해 다른
이의 마음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좀 미안함이 앞서기도 한다.
여기 세 사람이 있다. 과연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더 힘이 들까?
첫 번째 사람은 발달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 아이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늘 주파수가 아이를 향해 있는 사람. 다른 일보다 (주변의 애경사가 있을 때 항상
고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늘 그 아이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작년에 교통사고가 났어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고(아이의 특성상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이외엔 아이를 부탁하기가 아직은 어려움), 아이가 학교나 치료실에
가지 않으면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 전혀 쉴 수가 없는, 정말 아파도
아플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몸이 아픈 사람이다. 어려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었지만 그 후에 만성신부전증이 찾아와서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서 투석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다신 그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없을까
봐 까무러치도록 울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몸이 어려워서 아이와 함께
많은 일을 할 수 없어 늘 애만 태운다.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친구를 옆에서
보면서 '내 손에 박힌 가시'를 떠올리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 사람은 보기에도 아까운 아이를 먼저 하늘에 보낸 사람이다. 연락이 잘
오던 사람인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기엔 기분이 이상해 전화를 했더니,
통화를 안 한 그 7개월 동안에 아이의 투병생활과 함께 아이를 하늘나라에까지
보낸 사연을 얘기하며 울었다.
"그래도 언니는 아이가 아파도 곁에서 볼 수 있잖아. 난 더 이상 우리 아들을 볼
수가 없어..."
하며 울던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후배!
난 내가 너무 힘이 들 때마다 '손에 박힌 가시'를 생각하며 다시 나를 돌아본다.
과연 우리 세 사람의 삶 중에 어떤 삶이 더 나을까? 답은 어느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최고의 상황이라 느끼기에 쉽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이 그 아픔을 당했을 때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
난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리 각자가 가지지 못한 것만 보지 말고,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자! 아이 때문에 힘들 때는 아이를 먼저 보낸 후배의 아픔을 생각하고, 내 몸이
아플 땐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를 떠올리며,
보낸 자식에 대한 아픔이 생각날 땐 곁에 있지만 더 많이 해주지 못하는
못난 어미를 생각하라고..."
'일체유심조"라고 하더이다. 이미 살고 있으니 삶에 무게를 실어 살아야 함이
옳다고 생각할 뿐이요, 물론 반대 급부적으로 죽음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이 있오만
그것으로 내 남은 생을 갉아먹힌다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을 삼을 부분이 생깁니다.
정답이 없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다.
여러분도 수 없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살고 계시겠지요? 오히려 저처럼 만인이
아는 아픔을 가진 사람보다 더 말 못할 아픔을 지닌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며 위안을 삼으라면 '어불성설'인 경향도 있지만 때론 다른
사람의 짐을 통해 내 등에 진 짐의 가벼움을 느껴보는 것도 삶의 지혜라면 지혜가
아닐는지요?
2007-06-10
****여전히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나의 지인들...
각자의 어려움은 있지만 이제 그들은 글을 쓸 때보다 더 밝고 희망차게 살고 있다.
삶이 주는 현실이 그들의 아픔을 덮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주는 약효도 한 몫을 했으리라.
그들의 행복과 사랑을 기원해본다.
일 덕분에 가게 되었던 명동성당에서....잠시 휴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