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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언저리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
-배꽃의 추억
by
최명진
Apr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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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
"어디?"
"수통골~~ 배꽃이 피었을 거란 말이지..."
남편은 이런 나한테 익숙한 것이겠지.
별다른 말 없이 차를 달렸다.
조금은 늦었다 싶지만 오늘마저 넘기면 이젠 보지 못하리라.
다행히 날씨까지 맑은 하늘을 선사하니 오늘을 지나칠 수 없음이다.
아들 덕분에 우리가 전국의 산을 주말과 휴일을 통해 발품을 팔아 다닌지
십여 년이 넘다 보니 어느 순간 때가 되면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이
나를 움직이곤 한다.
이맘때면 어느 곳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지도가 그려진다.
대단한 길치인 내가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름의 강점은 사람 모두에게 있나 보다.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벚꽃, 개나리, 진달래, 홍도화....
꽃을 좋아하는 꽃돌이 아들 덕분에 난 그렇게 꽃 여행을 다니는
행운을 만났었다.
어렸을 땐 꽃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그 꽃이 지고 난 자리에 맺는 열매에 더 열광을 했었다.
살구, 앵두, 자두, 밤, 감....!!!
그들은 그냥 집에서 쉽게 취해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 뇌리 속에서 저장된 고운 꽃을 떠올리라면
논을 아름답게 덮었던 붉은 자운영,
뽕밭을 휘덮었던 하이얀 무릇 꽃~~!!!
안타깝게도 자운영과 무릇 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간은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한 아이는 조금은 특별한 어린 왕자로 내게 왔다.
건장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꽃~~!!
아들 덕분에 초등학교 6년 동안 난 도서관 전세를 내면서
아들과 꽃 책에 몰입했다. 아들이 관심이 있다면 나도 관심을 가져야지.
그래야 아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덕분에 난 그냥 들꽃으로 지나쳤던 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누군가 내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면서...
아들 덕분에 나는 그전에 보지 못했던 작은 꽃들을 보기 시작했다.
아련한 학창 시절 추억을 아들 덕분에 되살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배꽃이었다.
대학 다닐 때 그린벨트 지역의 저렴한 곳에서 자취를 했었다.
조금은 한적한 그곳이 내겐 정말 좋은 사색의 장소였던 것 같다.
특히 그 자취집의 옥상에 올라가면 봄날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정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배꽃의 무리였다.
게다가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배밭의 꽃무리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메밀꽃만큼이나 소금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마음이 좋아 그렇게 옥상에 올라
시간을 갖는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끔 하늘이 너무 맑아 별빛이 쏟아지듯 흐른 날이면 옥상에 올라
자리를 깔고 누워 별바라기를 하며 윤동주의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하염없이 그 하늘을 마냥 바라보기도 했었다.
유독 배꽃이 무리 지어 피는 이즈음이면 옥상에 올라 그윽한 달밤의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처음 달밤의 배꽃을 보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옥상에 올랐다가 은은한 달빛 아래 어느 한 곳이
등불을 밝힌 듯 환하게 내 시야를 당겼던 것이다.
사실 그곳에 살면서도 배밭이 있는지를 기억에 넣지 못했던 때였다.
내려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멀리로 보이는 곳에 환하게 밝은 곳이 어니냐
여쭸더니 배밭이라고 하셔서 처음으로 그들을 뇌리에 담았었다.
그때의 잔잔한 풍경이 어찌나 좋았는지 나는 꽃이 질 때까지 그렇게 옥상에 올랐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경험에 의한 시를 나도 모르게 읊조리곤 했다.
바로 고려시대의 이조년의 시, 이화에 월백하고....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출처]
多情歌(다정가).李兆年(이조년).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군에 가기 전에 남편도 자취를 했던
인연의 자취집~~!!
혹시나 하고 그곳에 들렸지만 너무도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더 이상 추억의 집을 만날 수 없었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난 달밤의 배꽃밭의 은은한 흐드러짐을 추억하고 있다.
비록 다시 그 달밤의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나마
시와 함께 추억할 수 있음도 좋다.
이화에 월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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