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에서 만난 노을진 봄

-한밭수목원에서...

by 최명진


'가정의 달',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참으로 허무하게 지나갔다.

무언가 거창하게 계획한 것도 없는데 특별한 기억도 없이 지나갔다.

물론 스치듯 담아놓은 사진들을 보면 분명 도둑맞은 시간은 아닌데

참으로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주변을 화려하게 채색한 넝쿨장미 덕분에 5월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음밭엔 황무지 바람이 불고 있으니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나 보다.




가까이 있는 오월드의 튤립축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해

장미축제만큼은 꼭 즐겨보자 싶었는데 시간이 휘이익 바람처럼

지나버린 것을 6월이 가까이 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 반에 아들이 한밭수목원을 노래했음에도 그조차도

가지 못한 미안함에 더위가 머리 꼭대기에서 노니는 시간을 피해

그렇게 가까이 있지만 가보지 못한 한밭수목원에 가게 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늦었다.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필 때 하나 둘 피어나는 장미.

넝쿨장미가 때 이른 햇살에 색이 바래 질 정도로

억척스럽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도 가지 못했던

그 시간이 절정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는 석양에, 화려한 절정의 시기를 지난 장미를 보면서

마치 할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다음을 맞아야 하는

허기로운 나를 만난 듯 아쉬움이 가득했다.



예전처럼 한 곳에서 자리를 붙박이로 하고 사진을 담을 만큼

장미꽃은 어여쁘지 않았다.

울 아버지의 꽃밭에 사랑으로 가득 피었을 장미를 아쉬운 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음에도 올해는 그 기회조차도 놓쳐버리다니...

한여름까지 들판을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수놓는 개망초만큼도

상큼하지 않으니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유실수가 있는 곳에 가니 기대하지 않았던 앵두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맞고 있었다.

우물가에 있어 더불어 목을 축였던 추억의 앵두.

저무는 석양에 그들의 고운빛조차도 담기 어려웠다.

내 학창 시절 귀한 학자금이 되어주었던 누에치기...

누에들의 진정한 양식이었던 뽕나무잎, 그 열매인 검은 오디~!!

대학 초기에 이름을 두고 입씨름을 했던 보리수 열매.

우리 동네에선 뽀로수, 다른 친구네에선 보리똥...

그의 제대로 된 이름이 보리수임을 대학생이 되어서

여러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었다...ㅎㅎㅎ



인위적인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진정 보고픈 이들을 보려면 최대한 자연적인 곳을 찾지만

어느 순간 게으름으로, 현실에 쫓기는 사람이 된 내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을 하면서 수목원이 감사한 곳으로 다가왔다.

그곳에 가면 그냥 사계를 먼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에 가지 않아도 산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랄까...



사람들은 이른 여름을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돗자리를 깔고

뉘엿뉘엿한 석양에도 움직일 줄 모르고...

젊음이 뚝뚝 묻어나오는 힙합의 율동에 스치는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풍경.

5월이 석양으로 지는 즈음에 만난 풍경이었다.

수목원 곳곳엔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갈아엎은 흙들이

강아지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가로등이 켜지고 그 아래로 사람들의 걸음조차

운치 있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는 시간.

더위를 피하려던 나는 내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흠칫 몸을 움츠렸다.

아빠와 더불어 나란히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

서울에선 '가정의 달', '계절의 여왕'인 5월을 시청 노천에서

발달장애 자녀들을 위해 노숙을 하는 부모님들이 있고...

난 내 행보에 따라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아들의 의견을 받들어

평화로운 수목원과 공원을 걷고 있을 뿐.

삶은 이런 것인가....

석양 따라 저쪽으로 내빼는 5월이 마냥 아쉽고 서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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