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체인지메이커를 만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by 최명진
중1 때 아들이 그린 작품-장애인권개선 캠페인



'더 큰 세상을 만들 준비, 되셨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나는

놀라서 움찔 뒤로 물러설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면서 얼마나 그 역할에 열정적인가?

나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있는가?

이 사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잘 돌아가 더 이상의

불편함이나 부당함은 없는가?


여전히 어리숙한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침묵이 가장 나를 드러내지 않고 공격을 덜 받을만한 선택이라는 생각에...

과연 침묵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의견인가.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고 반항과 저항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살아오던 내게 어느 날 물음표 하나가 떡 하니 주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살면서 물음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였지 그들에 대해

부정의 의견이나 다른 일침을 가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물론 때론 격하게 울컥함도 있었지만 내부의 불로 홀로 타다 꺼져버리기를 반복...


아들의 장애는 내 인생 최대의 쟁점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의견에 크게 반박하며 살아보지 못한 나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옳습니다.'를 일관하며 지내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고 싫으면 내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의 행동이 감동과 닮고 싶은 공감이 들면 그리 되려 소심한

노력을 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때마다 좌절을 경험하며 그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좌절하는 나를 위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들의 장애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내 삶에 말문을 트이게 해 준

엄청난 절박함을 주었다.


죽어라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 안 되는 일,

왜 내게 장애가 있는 아들이 왔는지 알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아들과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은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줄과 같아서 숨 쉬고 사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내 삶을 휘두르는 괴력을 발휘했다.

아들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겠기에 선택한 것이 그 물음표를 풀고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나만 이런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지?...

덩그러니 혼자였다가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을 만났고, 공감했으며

그들을 통해 모두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없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뭉치니 조금 더 숨이 쉬어졌고, 생각들을 모으니 훨씬 수월했다.


'장애인 부모연대'란 단체를 알지 않았다면 내 삶은 여전히 물음표 끝에

'그렇구나'를 연발하며 주어진 삶을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 살았을 것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또래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서

배제가 되어도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억지 수용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보이는 문제를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끌어안고 살아갔을 것이다.

억지 힐링을 하면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추호의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힐링이 아닌 필링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못한 채 그리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삶이 연속되었다면 난 아마 우울증에 무척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십여 년의 인연은 다시 장애인의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학령기 이후의

가장 큰 화두가 된 직업에 물음표를 달고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연리지 장애가족 사회적 협동조합'이었다.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누군가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겠지 하고 지나쳤던 일에 뛰어들 줄 누가 알았으랴.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도전이란 멋진 이름 아래 '소셜벤처 경연대회'를 한다 하여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보자고 몇이 모여 나갔던 경연대회와 그를 통해 워크숍에서 들었던 획기적인 말,

'아이디어는 자기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상처에 길을 묻고 상처에 답을 듣는다'

는 말에 필이 꽂혀 무엇에 홀리듯 지금의 자리까지 와버렸다.


누군가 연리지의 모델이 무엇이냐 물으면 딱히 대답할 것도 없다.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외국의 사례였고, 환경이 달랐다.

국내에 이러한 사례가 있었다 하더라도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냥 뭉치는 힘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면서 나름 머리를 굴리고 굴리면서

사업은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주어진 숙제는 시작한 우리가 풀어야 했고, 우린 그렇게 사회적 협동조합의

늪에서 허우적이며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사례는 또 다른 사회적 협동조합, 장애인 관련 직업을

창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어 회자되니 생각지 않게 우리를 찾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연리지의 사례가 성공의 사례이기보다 먼지 시작한 사례이기에

우리의 사례를 들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는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현실적 모델이 되었다.

그런 덕분에 난 시간만 나면 자료를 찾고 읽으면서 나 스스로의 변화 발전을

도모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덴마크의 '토킬 손'~!!

나처럼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면서 그 아들 덕분에 체인지메이커가 된 아빠.

자폐증을 문제가 아닌 능력으로 바꾼 사람...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비록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지구의 어느 쪽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더 열심히 세상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는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를 파고들다 보니 만난 책이 바로 [체인지메이커 혁명]이었다.


연리지가 세차 사업을 하게 되었던 동기 중에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강점화 한

부분이 가장 크게 어필이 되었었는데, 토킬 손 역시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강점화하여 직업으로 연결시켜 큰 성과를 거둔 사람이었다.

그처럼 전 세계에 혁신을 퍼트린 아쇼카 펠로우 18명의 도전과 사회혁신 기업가

정신을 담은 책이 바로 [체인지메이커 혁명]이었다.

여전히 내게는 멀리 느껴지기도 하면서도 가슴이 솜방망이질을 하고 감동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전철을 통해서 시작했고

나름의 결실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공감과 더불어 미치지 못함에 대한 이질감까지...


'관심과 문제 인식이야말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행동이란 자신이 품고 있는 신념이 그저 의견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거기서 그치지 말고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자.

'그 누군가가 바로 나. 나 자신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저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만 보고 그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

그들의 실천력과 창의력은 책으로 읽으면서도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며 여전히 얼떨떨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3년여 동안 내 가슴에 가장 스몄던 말 중의 하나를 들라고 하면,

'아(아기)를 낳았으면 책임져야지.'란 말이었다.

어쨌거나 연리지 장애가족 사회적 협동조합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

이제 4살이 되었고, 누군가의 말처럼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직원 교육을 하면서 그들을 한 명 한 명 다시 살펴보았다.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인연들이며, 사랑스러운 사람들...

체인지메이커가 되지 못함도, 그들에 대해서 더 확고한 대안을 세우지 못함도

모두 부족한 내 탓인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드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밑줄 그은 글들을 다시 새기며 좀 더 적극적인 내가 되자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중1 때 아들이 그린 작품-장애인권개선 캠페인
장애인권개선을 위해 내가 그렸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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