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시간

-금산 보석사에서의 산책

by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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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은데도 몸은 신호를 보낸다.

광화문 농성장 당번, 어머님들의 휴식지원을 위한 여수행을 하고 나니

집으로 돌아오는 몸은 마치 솜이 물을 머금은 듯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아들들과 함께 하는 백팔배는 포기할 수 없어 함께 했다.

어떤 순간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내가 먼저 멈출 수는 없는 일.

백팔배 후 샤워를 하고 나니 절로 피로가 몰려와 이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잠자기 전에 하는 독서는 최대한 짧게 한 후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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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일요일이라는 것도 심리적으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고3인 아들도 이번 일요일엔 학교에 가지 않으니(일요일도 격주로 학교에 간다)

나에겐 황금 같은 휴식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잠을 그리 길게 자지 않는 나였지만 몸이 무겁긴 했나 보다.

최대한 게으름을 피우며 9시까지 누웠다가 결국 일어나 앉았다.

등이 결려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ㅋ

아무나 하루 종일 뒹구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거북이처럼 최대한 느리게 아점을 챙겨 먹고 흐느적이며

집안에서 지냈는데, 오후가 되자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엄마 아빠를 쳐다보며

"엄마, 무엇을 하고 계세요?, 아빠 무엇을 하고 계세요?"

하며 같은 질문을 해댔다.

결국 나는 아들에게,

"아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나가고 싶어요."

했다. 그렇다. 아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여수에 간 시간 동안 아빠께 예당저수지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나보다 더 늦게 전날 집으로 돌아온 부자였는데...

남편과 나는 아들의 말에 순간 눈이 부딪혔고 그렇게 외출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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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니었으면 우린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며

뒹굴거리는 휴일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아들은 우리에게 그런 게으름을 허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린 십여 년을 전국의 산을 중심으로 유랑을 했고

덕분에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좀 더 건강해졌던 것 같다.

신체 건강한 아들이 무슨 죄이랴.

아무리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도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문밖의 세상은 쉽게 나아갈 수 없으니 그것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

그렇게 남편은 나갈 곳을 검색하고 남편의 눈에 들어왔던 곳이 바로

금산의 보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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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탐색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신록이 무성한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같은 듯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꾸물꾸물한 날씨가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듯했지만 감사하게도

잘 참아주는 하늘 덕분에 우리의 산책은 더욱 즐거울 수 있었다.

보석사~~!!

이름이 참 이채롭다 싶었다.

절 앞산의 금광에서 채굴된 금으로 불상을 조성하였다 하여 보석사라

하였단다.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걷지 않고 보석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울창한 신록이 우리를 맞았다.

햇살이 살짝 들더니 초록의 명암이 마치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길처럼

환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거기에 천년을 고스란히 살아낸 은행나무가 우리를 맞아주니 더욱 좋았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며 은행나무침대 영화를 떠올렸고,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를 보면서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위엄을 보았는데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그들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중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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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가기 위해 들어서다가 짐짓 발걸음을 멈췄다.

스님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유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떼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을 벌레가 죽은 다른 벌레를

황급히 끌고 가는 모습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생태계가 그러함을...

문득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의 영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숨을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던 그 시간이...

사찰에서 보는 풍경이라 더욱 눈에 더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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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두 아들과 집에서 하루를 마치며 백팔배를 하지만

이렇게 고운 인연으로 절에 왔으니 백팔배를 아니할 수 없는 일...

매일의 백팔배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갈한 운동이라면

절에서의 백팔배는 마음을 다하여 나를 정진하고 진정성으로 돌아보는 시간이다.

날이 후덥 해서인지 백팔배를 마무리할 즈음 깔아놓은 방석 위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얼룩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들 역시도 마찬가지...

이제 백팔배를 어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 아들이 너무 기특해 그냥 바라보았다.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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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사의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나무마다 달려있는 연등이었다.

대부분 석가탄신일을 전후로 연등 하늘을 만들었다가 거둬들이는데

이곳은 나무에 꽃이 핀 듯 연등을 걸어 시선이 머물도록 하고 있었다.

마치 그 나무에 맞춤형 꽃이 핀 듯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약수를 먹으러 갔더니

누군가가 띄어놓은 꽃잎이 둥둥 떠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무리 급해도 급히 물을 마시지는 말자 싶은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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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배를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함을 땀을 흘리고 나니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들도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약수를 마시더니 기분이 좋은지

특유의 상동 행동을 하면서 아빠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아들이 마냥 예쁜지 남편은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그런 부자의 모습이 난 마냥 좋아서 보고 또 보고...

우린 이렇게 산다..!!!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내 귓전에 들리는 타종소리.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절로 향했다.

저녁 예불이 시작되려나보다.

저녁 타종소리가 정말 아름다운 풍경으로, 경건함으로 다가왔던

지리산 화엄사와 영주 부석사의 저녁 타종 풍경이 고즈넉이 스며들었다.

지금은 여름으로 가는 길이니 그때만큼의 어둠이 내리지도 않았지만

저녁 타종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 같다.

절로 합장을 하고 나를 다듬게 된다.


늘 나에게 새로운 곳을 안내하는 남편이 참으로 고맙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다지 탐구적이지 않은 나에게

남편의 섬세함은 내게 부족한 동그라미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귀한 자산이 된다.

아빠 손을 잡고 신나서 발걸음을 옮기는 부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감사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일지....ㅠ

허락되는 한 아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줘야지.

보석사가 선물한 아름다운 신록과 땀을 통한 돌아봄, 부자의 아름다운 모습.

내 에너지로 삼아 주어진 시간 즐기며 살아야겠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난 집에 돌아와 몸살이 번져 그냥 눕고 말았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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