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하나로 견디는 무더운 여름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 출장세차

by 최명진

더위의 마력은 대단하다.

온전한 정신을 와해시키기도 하고, 열정도 녹여버리기도 한다.

난 더위에 무척 약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어쩌면 내 일생을

쥐락펴락하면서 나를 괴롭히곤 한다.

그 옛날,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호된 기억이 없었다면 난 지금

더위에 조금은 덜 예민할 수 있었을까?

여지없이 여름이 다가오면 온몸으로 느끼는 더위에 대한 민감함은

날 위축시키곤 한다. 어찌 이 여름을 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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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의 악연은 국민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벼를 심었던 우리 집.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내 역할은 올벼를 찾아 날아온 참새를 쫓는 일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미련한 성향이 있지만 부모님이 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하는 줄 알았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논으로 향했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형제들이 오락가락하면서 함께했고, 난 그 일이 싫지 않았다.

논 가운데 또랑에 비닐로 나름의 요새를 만들어놓고 물을 첨벙이며

노는 것도 좋았고, 물고기를 잡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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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유난히 햇살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배를 옥죄기 시작했던 것이다.

난 속이 뒤집히는 통증을 느끼면서 그렇게 겨우 집에 다달았고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깜짝 놀란 엄마가 더위를 먹었다며 뒤꼍에 있는 익모초를

생으로 빻아 즙을 내어 강제로 먹으라고 하셨던 것 같다.

이러다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모초 생즙은 맛도 맛이지만 냄새 자체가 어찌나 독하게 쓴지 절대 입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지만, 코를 막고 한 번에 먹으면 된다는 엄마의 말씀에 따라

나는 살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그 진초록의 익모초즙을 벌컥 마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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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즙보다 독한 것은 바로 더위에 대한 트라우마였다.

그해 제법 많은 날들을 난 뒤틀리는 속으로 인해 많이 아팠고 그 뒤로

햇볕이 내 피부를 파고들어 스며들라치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렇게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격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해마다 습관처럼 그렇게 난 더위를 먹었고, 엄마의 강력한 처방전인

익모초즙을 생명의 신약처럼 들이키곤 했다.

익모초가 너무 썼기에 그 꽃이 그토록 이쁘고 앙증맞음을 최근 몇 년 전에

겨우 알았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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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더위와 다시 싸웠던 최근 기억은 바로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서였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친환경 건강 출장세차를 시작했던 우리는

세차에 적응하기까지 소소한 도움을 많이 필요로 했다.

명색이 이사장인 나는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다.

대전시청에서 2013년 4월 24일에 출장세차를 시작하면서부터 시간만 나면

그곳에 들러 함께 일을 했다. 모두가 서로 익숙지 않은 일에 고객의 세차를 시간에

맞춰 끝내려면 결국 협업이 가장 절실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그렇게 발달장애인 울 직원들과 세차를 했었다.

내가 세차라는 것을 하리라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난 그렇게 세차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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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장세차장을 간단히 묘사하자면 주차장 세 면에 천막 하나를 세우고 그 옆에

세차장비가 든 차량을 세워놓고 세차를 하는 방식이다. 오폐수가 나지 않는 세차이기에

가능한 출장세차. 그렇지만 노웻이란 약품을 세차용 타월에 발라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수작업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에어건으로 불어낸 면을 쓱쓱 닦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느 순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곤 했다.

그나마 한 여름이 아닐 땐 다행이지만 이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땐 땀이 눈으로

스며들어 어려움이 많았다.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세차를 하고 있으면 '이사장이 세차하는 것을 처음 본다'며

놀라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의 세차를 알려야 했고,

그 세차를 이용하시는 분들께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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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의 세월이 흘러 이젠 두 개의 팀으로 나눠져 팀장님들의 리드하에 울 직원들이

세차를 하면서 내가 세차에 투입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 사이 직원들의 세차 솜씨도

늘어 이젠 제법 전문가 티가 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여전히 사업은 쉽지 않지만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 황사가 오는 봄, 눈 비가 오는 계절을 온전히 견뎌준 직원들이

내 앞에 있을 뿐이다. 묵묵히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함께 버텨준 직원들이 있기에

늘 감사와 지켜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주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젠 더워도 예전처럼 티를 내기도 미안하다. 나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서 묵묵히

세차를 하고 있을 울 직원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온다.





지난주에 연리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지족동 품앗이 매장이 있는

울 출장세차장으로 갔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고 날씨는 후텁하여 누구라도

날 건드리면 화를 낼 것 같은 불쾌지수가 최상인 날이었다. 계절학교 교사교육 중

시간을 내어 간 곳에서 땀인지 비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범벅이 된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슴이 아리다. 천막엔 간간이 내린 비가 무게를 알리려는 듯

아래로 처져 있었고 그 아래에서 팀장님과 두 직원이 세차를 하고 있었다.

마침 인터뷰를 하러 오신 분과 난 야외에 처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하는데도 은근 흐르는 땀을 느끼며 난 밖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떠올렸다.

빨리 시원한 음료라도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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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났다. 그분도 우리 연리지에 대해 아시기에 충분히 보시고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척박한 환경에 있음에도 누구 하나 이탈하지 않고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가족처럼 끈끈히 연결된 연리지의 힘을 본다. 비록 수익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누구보다 장애인 당사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함께하는 연리지임을 말하고 싶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부분에서 난 미안함이 넘쳐 죄인이 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는지를 확인받으며 미소를 짓는 울 직원들...

고맙고 감사하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이제 시작인 여름을 어찌 보내야 할지...



e5e7cf757f09c80b6d9753ab655cc13d.jpg 연리지 단합대회 때.....


연리지를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하느님과 타협을 하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비가 오려면 제대로 오기나 하던지 오락가락하면 우리는 세차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또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도 걱정은 이어진다.

갑자기 퍼붓는 비로 천막이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던 아린 추억이

아직도 선하기에 자주 하늘을 보며 내 마음을 전하곤 한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아(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져야지."

나도 그러고 싶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디 무더위가 엄습한다는 이 여름을 울 직원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견뎌내길.

이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20150215_155826.jpg 울 아들의 그림....골을 넣기 위한 긴장감이 마치 내 긴장감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