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내게 주어진 또 다른 여유

짜글한 여름밤을 조몰락거리다.

by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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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다리를 뻗고 누울 집이 있으면서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난 행복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음은 반대로 떠난 후 다시

돌아올 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니까.

그 보금자리가 크던 작던 상관이 없다.

그냥 내 마음 하나 툭 하루의 일과를 가방을 내던지듯

던져두고 발을 뻗어 쉴 수 있음 자체가 힘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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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를 두고 길을 떠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룻밤의 인연을 맺은 곳으로...

어느 곳을 가든 집보다 편안하고 좋은 곳은 없는 거 같다.

이미 내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냥 주어진 하루를 색다르게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준비가 되어있는 까닭이다.

양평 한화리조트~!!

우리가 하루 인연을 맺은 곳이었다.

열심히 걸어준 두 다리를 편히 뻗을 수 있는 우리의 하룻밤 숙소.


가볍게 양평시내에서 시장을 봐서 들어갔다.

밥을 하고 간단하게 불고기를 한 다음 시장을 반찬으로 맛나게 먹었다.

우리끼리 다닐 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부모님과 함께하니

먹는 시간도 음식도 신경이 쓰인다.

괜히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도록 여유를 드리고 싶은데...

감사하게도 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아버지도 잘 드셨다.

엄마도 시장을 반찬으로 잘 드셨다.

물이 많은 동네라서 일까.

그냥 눅눅함이 숙소에 친구처럼 머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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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다.

나름 열심히 걸었던 엄마는 휴식을 선택하셨고

남편은 일박의 인연을 맺은 곳에서 할 것이 없을까 탐색을 나갔다.

설거지를 마친 내게 온 남편의 전화,

"나와 봐. 공연이 있네...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나와. "

이미 피로에 지친 엄마는 손사래를 치시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이미 아빠랑 먼저 나온 아들은 공연을 하고 있는 야외광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밤의 기온은 적절하게 따스웠고

그 기온은 그냥 무언가를 하기에 딱 좋은 정도였다.

한쌍의 남녀가 열심히 무대를 채워주고 있었다.

발음을 들으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듯...

낯선 땅에서 공연을 펼치는 그들을 보니 또 다른 뭉클함이...

게다가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고 있으니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싶다.

정말 뇌리 속에나 남아있을 법한 옛날 노래부터 지금의 노래까지.

윤승희의 '제비처럼'이란 노래를 들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내 어릴 적 들었던 아득한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노래의 의미는 어느 정도 알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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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의 공연은 나름 즐거웠다.

이미 충분히 즐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아니면 흥이 많은 민족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제법 호응을 하며

공연을 즐겼고,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밖으로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까지... 휴가지의 여름밤은 더워도 즐거워 보였다.

나 역시도 나가서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열심히 함께 따라 부르며 최대한 호응을 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런 곳까지 와서 두 팔을 끼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영 아니라는 생각이

있기에 최대한 손바닥이 따뜻해지도록 손뼉을 치며 함께 즐겼다.


덕분에 남편이랑 얼마만인지 기억에도 없는 생맥주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루 종일 열심히 달려주고 함께 해준 고마운 사람.

운전할 일 없으니 이런 때나 기분으로 한 잔, 좋지 않은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남편과 기분 좋은 건배를 위해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낯선 곳에서의 여름밤을 즐겼다.

공연을 보는 내내 박수를 치면서 아버지의 옛 추억을 열심히 듣고

호응을 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감수성 풍부한 아버지는 연신 무언가를 열심히 말씀하시고,

남편은 그것에 호응을 해주니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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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나왔으니 산책할 곳은 없을까?

찾아봐도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주차장을 꽉 메운 차들 사이로 쏟아지는 가로등 빛을 등대 삼아

잠시 걸어보았다.

무언가를 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공감하면서 우린 아쉬움을 안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예전에 설악산 리조트에서는 마술과 함께하는 흥겨운 공연을 봤던

기억이 문득 스쳤다.

맨날 여행을 하면서 예약도 필요 없는 값싼 곳을 찾아다니다가

리조트란 곳을 처음 간 아들의 감격스러운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덕분에 공연도 보고 여름밤을 즐겼던 기억이 더불어 스쳤다.


눅눅함을 피하기 위해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

혹시나 하고 챙겨 온 책을 펼쳤다.

하루의 여독을 녹이기 위해 쉬시는 부모님이 계시니

무언가 소리를 내는 일보다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선택 중 으뜸이

독서란 생각을 했었다.

커피 한 잔 대충 타서 테이블 위에 놓고 책을 펼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내 몸을 잠식한 감기란 녀석도 싫지 않은지 잠시 침묵을 선택하고 있었다.

짜글한 한여름밤, 그 여름밤에 굴복하기보다는 동행을 선택했다.

책장을 넘기니 보이는 또 다른 세상...

한여름밤을 조물딱 조물딱... 어쨌거나 난 그 여름밤을 커피 타듯

휘저으며 쑤욱 들이켰다.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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