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아니...!!!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by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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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후텁한 날씨였다.

바람조차도 인색해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저녁이었다.

집안 어느 곳을 가도 적정 수위를 넘긴 기온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은 영화관이었다.

우리에게 선택된 영화는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



2010년, 글방에서 인연을 맺은 분의 초대로 호주에 갈 때

초등 6학년 아들이 비행기 안에서 읽고 있던 책이 [덕혜옹주]였다.

무엇이 녀석의 가슴에 사무쳤는지 녀석은 호주에 도착해서도

번복해서 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들은 얘기했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꼭 보고 싶다고...


2015년 12월 16~17일,

1박 2일간의 대마도 여행을 뜻하지 않게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다시 덕혜옹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나라가 보인다는 대마도...

뜻하지 않은 정략결혼의 희생자, 덕혜옹주.

아들의 손에 들렸던 [덕혜옹주]가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곱씹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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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의 소원은 드디어 이뤄졌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대마도 갈 즈음에 이미 들었던 차라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개봉날을 기다렸는데...

토요일 저녁에나 시간이 허락되는 아들의 시간에 맞춰

미친 더위에 쫓겨 우리는 그렇게 [덕혜옹주]를 만났다.

잠조차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열대야의 폭염에

덕혜옹주를 만난 건 어쩜 필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심야의 밤이다.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이리도 많았나?

현장에서 표를 구입하면 바로 볼 줄 알았는데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우린 한 시간여를 훌쩍 더 기다려

다음 타임인 10시 20분 타임을 예약해야 했다.

이 역시도 맨 앞자리에 겨우 네 좌석이 남아 있어

천우신조 격으로 얻은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덕혜옹주의 생애에 대해서 알고 있던 터라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푹 빠져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 시기에는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이미 국권을 잃어버린 나라의 황녀이지 않던가.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도 없을뿐더러,

정신을 똑바로 차려 살려고 할수록 더욱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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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덕혜옹주'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었다.

영화의 허구와 기록의 내용의 상이함은 나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에도 나라가 위태로움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는

모진 수모와 절망, 두려움, 울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말이 '어찌 아니~~~'였다.

어찌 아니 마음에 병이 들지 않을까.

어찌 아니 울분을 토하지 않겠는가.


일전에 보면서 눈이 짓무르도록 눈물을 흘렸던 영화 [귀향]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이 땅의 딸들을 짓밟히게 했고,

나라의 위태로움이 이 땅의 황녀를 병들게 하지 않았는가.

영화 [해어화]에서처럼 사랑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비운을 또한 겪지 않았던가.

영화 [서프러제트]의 주인공의 말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

"우리에게 딸이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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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시간에 돌아오면서 우린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남편은 덕혜옹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큰아들은 낙선재로 돌아와 덕혜옹주와 김장한이 나누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해방이 되고 기쁨에 들떠 딸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려던 기회가

좌절되었을 때, 그토록 자신을 힘들게 했던 한택수가 유유히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장면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인들 경악하지 않으랴. 누구인들 정신줄을

놓지 않으랴...



오늘 밤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벌써 새벽 3시가 훌쩍 넘어버렸으니...

간밤엔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늘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운의 삶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덕혜옹주도 그녀의 남편도 시대가 낳은 비극적인 인물들이 아닐까.

어찌 아니 절망하고, 어찌 아니 울분을 토하지 않으리오.

대마도에 갔을 때 비석 옆에 쓰여 있던 글이 마음으로 새겨지는

야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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