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장애아들로 인해 활동을 시작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부모연대란 인연으로 조금 더 활동에 집중한 시간만도 10년이 훨씬 넘었다. 막연히 아들의 장애를 직면하면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과 불합리에 대해서 물음표가 달렸고, 그 일들에 대해서 궁금해 무조건 쫓아다녔던 시간이 조금씩 의문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나도 많이 변화를 했다.
‘절박성’~!!
처음 활동을 할 때 누군가 내게 “왜?”냐고 묻는다면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절박성’이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 전에는 무심했던 일들이 이제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의 삶처럼 ‘그냥 내가 참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아니었다. 그땐 그냥 내가 손해를 보고 마는 정도였다면, 아들의 장애로 인해 오는 불합리와 불편함은 아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손들고 발표하는 자체를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장애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절박함을 내 생활의 경험을 통해 상대에게 툭툭 던지며 그들과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상대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고, 그들이라면 어떤 행동을 선택했을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의도치 않았던 내 삶에 기둥처럼 콱 박혀버린 ‘장애’에 대해서 당당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거니와 장애를 이유로 아이를 버리거나 내치지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를 사회는 차갑게 내쳤다.
‘역지사지’~~!!
한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이 말이 지금처럼 가슴에 날카롭게 박힌 적이 없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초가 되는 것이 ‘역지사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입장이라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툭툭 던졌던 말이 얼마나 상대에겐 상처가 되는지, 그를 통해 그들의 삶이 황폐해지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땠었나?
인권감수성~!!
활동을 하면서 올해 내게 가장 가슴에 와서 새겨진 말이다. 장애자녀를 키운다고, 가르친다고, 그들과 일을 한다고 모두가 감수성이 넘치지 않음을 현장에서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처절하게 짓밟히는 장애 인권을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복지관에서, 치료실에서, 시설에서... 장애 당사자들이 가장 친밀하게 접하는 곳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행되는 인권침해와 차별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비일비재하게 만났던 것이다.
다시 돌아본다. 이제는 처음을 돌아볼 시기이다. 권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여 내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나 돌아볼 일이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면서 조금만 그 껍질을 들춰보면 ‘이권’이 또아리 트는 상황을 여러번 보아왔기에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장애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를 돌아보며 감수성을 상기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인권감수성에 기반 한 인권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감수성의 확장으로 모두를 보듬는 따뜻한 인권사회가 되도록 하고 싶다. 그 작은 점을 찍는 데 나의 열정을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