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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아들과 엄마의 세상만나기
소셜맘이 필요해~~!!!
-민폐끼치는 자의 소고2
by
최명진
Sep 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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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더위로 지친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게다가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로
내 몸은 이성적 판단을 따르기에 무리가 있었다.
전날 장애학생을 위한 계절학교 일일 평가 회의를 마치고 다시 시청으로 가서
제법 복잡한 회의를 하고 난 뒤 몸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은 휴식을 간절히 원했고,
난 아들의 저녁도 챙겨주지 못한 채 시체처럼 몸을 바닥에 팽개쳤다.
어찌나 힘들었는지 눈을 뜨니 새벽 5시~~!!
씻지도 못하고 팽개쳐진 몸을 추스려 씻고 앉아 잠든 아들을 보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 설움이 치켜 올라왔다.
난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영화와 연극도 좋아한다. 글쓰기, 사진 찍기도 좋아한다.
이전에도 있었던 나의 취미는 아들의 장애로 인해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취미임과 동시에 아들의 발전에도 한몫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느 순간 내 온몸을 감쌌다
. 나만을 위한 우아한 취미 시간을
아들의 장애는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취미는 아들의 사회성 향상과 사회적응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되었다.
아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난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연극, 영화 등의 문화생활에 대한 에티켓과 개념을 알려주기 위한
체험 형식으로 그 모든 것들을 경험해야 했다.
글쓰기, 사진 찍기도 아들의 성장과정을 진솔하게 녹여내어 보여주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나의 취미는 더 이상 휴식이 아니었다.
부모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자식의 장애로 인해 자식을 버리고자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그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부모는 갈등하고 절망하게 된다.
내게도 날개 없이 나락의 끝으로 끊임없이 추락하던 때가 있었다.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현실의 벽을 알려주려고 그랬는지
생각지 못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고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다.
이성이 있을 때가 오히려 더 고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그 무감각이 나를 살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 절망의 끝에 바늘구멍처럼 보이는 사회는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미쳐야(狂) 미친다(及)고 했던가
.
미치지 않고선 아들과의 그 험난한 검은 터널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도움을 받기 위해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아들과 세상을 마주하기 너무 힘들어서 토굴 속에서 처럼 은신하고픈
날도 많았었다. 스타도 아닌 아들이 나가기만 하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독점하는
그 시선테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았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아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내곤 했으니까.
그래, 과감히 내놓고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나의 결론이었다.
내 아들의 나이 올해로 17세~~!! 고등학교 1학년이다.
비장애 아이들 같으면 엄마랑 쇼핑조차도 좋아하지 않을 나이다. 그저 친구가 좋고
또래가 좋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최고로 좋을 나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울 아들은 누가 봐도 건강한 신체와 멀쩡히 잘 생긴 외모를 하고도 엄마나 아빠,
가족이 아니면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활동보조인이 있다 하여도 아들의 모든
시간을 그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활동보조인은 아들의 치료실 일정으로 시간을 모두 쓰다 보니 현실적으로
아들에게 필요한 사회적응 연습이라든지 여가, 문화는 가족이 함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에게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시간엔 그림자 지원이 때론 필요하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얼굴이 장애가 있는 아들이었다.
주중은 나름의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지만 주말과 휴일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다.
가장 편안한 집이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을 가장 적게 만들어주기 위한
남편과 나의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과 내가 온전히 아들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때도 분명 있다.
그럴 땐 연년생의 형이 그 역할을 많이 해주었지만 아들도 이제 고등학생이다 보니
얼굴을 마주할 시간조차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늘은 어디에 가면 좋을까? 무엇을 하면 울 아들이 가장 행복해할까?
아들은 엄마, 아빠 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선택의 폭이 지극히 제한적인 현실이 참으로 슬프고 막막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오늘 아들과의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천근만근인 몸과 끊임없이 그럭그럭 올라오는 가래와 몸살로 휴식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나 저제나 나갈 기회만을 바라던 아들을 보며 얼마나 미안하던지...
결국 남편이 쪽 시간을 내어 아들과 드라이브를 하고 데이트를 해주었다.
울 아들에겐 아들의 사회적응과 여가. 문화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있어 다행이지만 실상 이런 기회를 줄 수 없는 장애인 가족도 많다.
경제적 문제, 심리적 문제, 정서적 문제, 가정적 문제 등등으로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장애가족들이 주변에 많다. 장애로 인해 드는 비용은 더 많은데
보호와 지원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또한 이조차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 주변엔 슈퍼맘들이 참 많다.
장애자녀를 낳았다는 이유로 신체의 건강 여부를 떠나 슈퍼맘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엄마들이 부지기 수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아프면 장애자녀는 가장 두려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 장애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파서도 다른 일이 있어서도 안된단 말인가? 그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사회가 함께해줘야
한다.
'소설마더'가 필요한 이유이다. 아무리 부모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사회 속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장애부모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역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장애자녀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적 준비와 역량을 키워야 하고, 사회에서는 그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울타리,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는 사회가 그들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사회에선 충분히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슈퍼맘이 되길 제안했고,
슈퍼맘을 칭송했다. 그 슈퍼맘들이 지쳐 쓰러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장애자녀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슈퍼맘 콤플렉스에 걸려야만 하는 것일까?
부모로서 충분히 따뜻하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모는 노력해야 할 것이며,
사회는 이런 부모들이 정성으로 키운 장애자녀가 충분히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소셜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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