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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Sep 19. 2015

지리산 천왕봉에 서다

-발달장애 아들과의 진정한 산행의 정수를 맛보다.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지리산에 올랐던 것이.... 그땐 노고단이었다.

그 뒤로 마음에 병이 생겼으니 더 높이 오르고 싶은 것~!

올해는 작정을 하고 철쭉제를 기다려 가기로 결정을 했는데...

인연이 여기까지였는지, 좀처럼 산장 예약이 되지 않고...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몇 초 안에 결단이 나는 예약은 늘

우리를 비켜갔다. 할 수 없이 남편은 특단의 결정으로 일단 떠나고 보자고...

그럼 나 역시도 거부할 것 없이 짐을 싸고... 우울한 소식을 들은 이후라

더욱 마음은 무겁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을 만나고 우리는 예정대로 백무동길을 택해서 깊숙이 들어갔다.



백무동탐방소 가장 가까이에 선택의 여지없이 민박을 정하고 겨우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10시가 넘은 시간~! 단지 방 밖에 없다는 얘기가 무슨

말인가를 실감하는 순간~!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갔던 정현이가 돌아와서 하는 말,

"엄마, 비위생적이긴 하지만 가장 친환경적인 곳이에요. 각오하고 가세요."

아들의 표현에 한바탕 웃어버리고 가보니 역시~!

아들의 절묘한 표현에 나 역시도 생각을 보태고... 밖에 딱 하나 있는 물줄기에

간단히 세수를 하고 이른 아침의 산행을 위해 그렇게 들어와 누우니

성현이와 정현이는 너무 즐거운가보다. 이불을 덮어 쓰고 너무도 흥겨워하는 아들들~!

그 모습을 보니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일요일 새벽 4시 30분~!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원래 가려던 곳은 문순태의 [철쭉제]에 나오는

세석평전이었지만,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코스를 보탰기에 조금

더 출발을 앞당겼다. 새벽 5시 15분, 드디어 백무동탐방소로 진입,

우리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조금 선득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어서인지

성현이가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너무 잘 갔다. 감사할 일이었고,

나 역시도 생각 외로 편안했다. 우리의 코스는 하동바위를 거쳐 참샘을 거쳐 

장터목으로 가는 것~! 기분 좋게 일출을 맞으며 장터목에 오르니 아침 8시 15분~!

생각했던 것보다 이르게 장터목 산장에 오르니 기분도 가뿐하고

또 다른 욕심이 올랐나 보다.


남편이 가고자 했던 곳은 천왕봉, 내가 원했던 곳은 세석평전~!

남편은 이렇게 이른 시간이니 천왕봉을 거친 후에 가자고 긴급 제안을 하기에 이르고...

그렇게 우린 변경된 계획에 또 하나의 계획을 추가해서 가게 되었다.

1.7km라니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는 생각~! 장터목 산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오르기를 정말 잘 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마음을 당기는 영봉(靈峰)~!

그 잠깐 사이에도 구름이 스쳐지나 가고 해가 나고, 다시 안개가 깔리는...

환상이었다. 게다가 구상나무와 고사목의 어울림이란~! 진정 천왕봉을 오르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찬탄~!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 역시도.... 진정으로 지리산에 올랐구나 싶은 희열이 돌았다.



순간에 모였다 흩어지는 안개구름에 무거웠던 마음이 함께 휩쓸리고...

그런 마음을 맘껏 즐기게 해주는 든든한 두 아들이 있어 더욱 감사하고.

그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 그늘이 드리운 산봉우리가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내가 만나고자 했던 철쭉들이 드물게 피어 다음 편을

예고하고... 정말 올라오길 잘 했다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정 이외의 길이었기에 3시간이 더 흘렀다(왕복). 여유 있게 머물렀기에..

다시 장터목 산장으로 돌아오고 나니 오전 11시 30분~!

올라갈 땐 몰랐는데 배에선 벌써 신호가 오고...

백무동탐방 지원센터- 하동바위(1.8km)-장터목(4km)- 천왕봉(1.7km)

-장터목(1.7km)....

벌써 9km를 넘게 걸었으니 신호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

세석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던 당초의 일정을 앞당겨 장터목 산장에 서점심을 먹었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밥도 꿀맛~! 저쪽으로 보이는 세석 가는 길이 자꾸

나를 손짓해 부르니... 자꾸 가자 재촉하게 되는 나~!

그렇게 우리의 산행 후반이 시작되었다....





장터목산장~~
천왕봉~~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고 일어선 시간이 11시 30분~!

이젠 내가 20여 년 동안 그토록 그리던 세석평전을 향해 갈 시간~!

마음이 바빠졌다. 빨리  보고 싶다. 그런데 인터넷의 소식대로라면 철쭉이 아직

많이 피지 않았었는데.... 20여 년을 애태우며 기다린 나를 위해 어여쁘게

반겨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그렇게 우린 출발했다.

장터목 산장의 한고비를 넘으니 넓게 펼쳐진 세석평전~!

운무가 출몰하는 그곳에서 나는 그토록 기다렸던 철쭉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왠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철쭉~!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면 분명 연분홍 빛을 내어야 할 것인데...

그 넓은 세석평전이 그저 신록으로 푸르기만 할 뿐....

세석에서 넘어오시는 분께 혹여 철쭉이 좀 피었는지 묻자, 그 아저씨는

"세석 쪽으로 가면 이곳보다 좀 더 피었지요."

하고 애매한 대답만 남긴 채 옆을 스치셨다.


지금껏 산에 오르면서 세석에서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될

수 있으면 철쭉 사진을 지향했는데... 이를 어쩐다~! 아쉬운 대로 만나는 철쭉에

인사를 하며 아쉬움을 담았다. 난 아쉬운 마음에 일주일만 늦추었다면 분명

흐드러진 철쭉을 만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과연 '박판돌과 나'라는 사람이 머물렀던 곳이 어디쯤일까 둘러보고 있으니...

문학의 힘이란 그런 것일까? 내가 지리산을 간절히 가슴에 담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지리산, 너 지리산이여'란 민중가요와 지리산을

배경으로 써진 소설가 문순태님의 [철쭉제]에까지 이른다. 그때 나왔던 영화와

노래와 소설로 인해 나는 20여 년을 그렇게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꼭 가보고 싶다고 그렇게 애를 태우면서도 끝내 가보지 못했던

가장 아쉬운 장소로 남아버린 지리산~! 그 간절함을 남편은 꼭 들어주겠다고 했고, 

재작년에 우린 드디어 지리산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세석은 아니었지만 그 유명한 화엄사와 노고단이 있는 곳으로...

첫 산행에선 갑자기 내린 눈으로 도중에 하차하는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그 아쉬움은 다시 작년의 산행을 이끌었고... 작년 이맘때 올랐던 노고단에서

난 철쭉의 잔재를 보면서 내년에는 기필코 이 철쭉을 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나의 간절한 소망은 한 해를 숙성시키며 더욱 간절해졌던 것이다.

저 멀리 세석대피소가 보이고, 장터목 산장보다 훨씬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덩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세석산장으로 가는 양쪽 길에는 

연분홍 철쭉이 나름 20여 년을 기다려 온 나를 예쁜 모습으로 맞고 있었다.


사실 [철쭉제]를 읽으면서는 진홍빛 철쭉을 그리며 읽었었는데...

이곳에선 진홍빛 철쭉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수줍은 새색시 같은 연분홍 철쭉이

살짝 봉오리를 열었거나, 다음에 올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정도랄까?

아쉽다,,,,,아쉬워.....!!! 드넓게 펼쳐진 세석평전~! 나는 어느 곳으로 가야 

'나'와 '박판돌'이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던 곳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표현처럼 그저 흐드러진 철쭉꽃만 피어 있어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을 것인가?6.25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나는 왜 이리도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매는지... 20살 풋풋했던 내게 붉은 빛 철쭉의 이미지가 너무도

깊숙이 박힌 탓이리라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그 넓은 세석을 바라보았다.

박판돌이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들의

족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스무 해를 기다려온 나의 간절함은

이제 이곳에 놓아두고 가려 마음 먹었다.


대신 다음에 찾을 때에는 연분홍 철쭉이 최대한 흐드러진 시기를 꼭 맞춰

오리라 다짐을 했다. [철쭉제]의 '나'와 '박판돌'이 다음 철쭉제를 기약하며

헤어지듯이.... 20여 년의 기다림은 진정한 갈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절함을 풀만한 장면을 만나지 못한 나의 허탈감~!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20여 년을 기다려 온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고맙고 고맙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한신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하산길~!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도 어려웠던 길이었다. 다리도 무거워졌고,

마음 또한 무거워졌다.... 그렇게 우린 19.1km를 13시간 30분에 걸쳐

돌아왔던 것이다. 아, 인간승리란 이런 때 쓰는 말이겠지...

나의 아들들아~! 남편과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아들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천왕봉을 간절히 원했던 남편은 천왕봉에 오를 수 있었고, 20여 년을

철쭉제의 배경이 된 그 세석평전을 가슴으로 품으며 살아왔던 나는

드디어 그 광활한 세석평전을 밟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감사할까?

[철쭉제]는 분명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이렇게 나를 간절함으로 살게 했던

것은 갈등 구조를 해소하고 다음 철쭉제를 기약하며 악수를 하고 헤어진 그들의

화해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나'와 '박판돌'이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듯이 나 역시도 연초록이 대세인 그 드넓은 세석평전에게 나름의 악수로 약속을 하며 돌아왔다. 다음엔 좀 더 확실하게 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서 오겠노라고... 아직도 작은 사진 한 컷에도 마음이 쿵덕 이는 

것을 보면 나의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리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다.

내 가슴에 묻어 둔 그 아쉬움은 나를 또 이곳에 이끌 것을 안다.

그 이끌림을 절대 거부하지 않으리라..... 스무 해를 기다린 간절함으로....




 

 2009-05-27 
  



**** 발달장애 아들의 조절력과 사회적응을  위해 시작했던 산행~~!!

집 앞의 낮은 산부터 조금씩 높이를 더해 우린 드디어 남쪽에서 제일 높은 천왕봉을

만날 수 있었다.(한라산은 이후 등반을 했다.)

진정한 가족애를 느끼며  함께했던 너무도  소중한 추억~~!!!

동기부여를 해준 아들이 너무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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