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슬리퍼~!
그러나 내겐 항상 울컥함을 안겨주는 슬리퍼, 급하게 달리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슬리퍼~!
그 슬리퍼를 보며 어제도 오늘도 나는 나를 다독인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조금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만 더 여유롭게.... 그렇게 가자고 다짐한다.
이 슬리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2월~!
슬리퍼 하나를 사면서 그렇게 고민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떤 것으로 사야 저렴하면서도 예의에 벗어나지 않을지...
너무 싼 티 나서 민망함을 받는 것은 아닐지...
사람은 어떤 처지가 되면 미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고민을 하며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고, 그때가 바로 나에겐
그 시기였다.
2006년 3월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다른 이들은 고민하지 않는 고민을 하며 고른 슬리퍼~
아이의 실내화도 아닌 슬리퍼를 고르며 서글퍼지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하고...
막연한 불안함에 잠 못 이루던 그 해~!
그 슬리퍼의 용도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복도에서, 혹은
교실에서 아이와 함께하기 위한 슬리퍼였다. 산만하고 돌출 행동이 큰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의 아들 아들과 함께하기 위해 산
슬리퍼였다. 원반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이 어려워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한 장애아 엄마들의 궁여지책 중의 하나~!
그러나 나는 그 슬리퍼를 학교에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엄마라며 나의 출석을 완강히 거부하셨던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
아이 키우는 것도 힘이 드는데 왜 어머니가 그 일까지 하려고 하냐며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볼 테니 걱정 마시고,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만이라도 쉬시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눈물을 뚝뚝 떨구며 감사하다는 말만을 남기고 나는 돌아왔었다.
혹여 그 이후라도 그 슬리퍼가 쓰일 일이 생길까 봐 나는 몇 달 동안은
슬리퍼를 꺼내어 다른 용도로 쓰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세월이 흘렀고 교육계도 변했다.
엄마가 학교에서 아이 때문에 보초를 서는 일은 없어졌다.(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었다.. 그것은 보조원의 일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슬리퍼를 집에서 편하게 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기다림이
필요치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리퍼를 신거나 벗으면서는 가슴 한켠이 늘
싸하게 아파온다. 그리고 늘 기도를 한다. 이 슬리퍼의 처음 용도를 떠올리는
날이 없어지기를...
어제 아침의 일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상태로 학교에 들어선 아들~!
'화장실~'이란 단어를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던 아들이 일층에서
일을 보자는 선생님과 신경전을 벌였다. 너무 기분 좋게 왔던 녀석이 돌변하여
울고 불고 난리였다. 결국 아들은 그 기분을 조절하지 못하고 내내 울고
선생님은 그렇게 어려움을 겪으셔야 했다. 집에 돌아오려다가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전화를 받을 일이 있어서 차에 앉아있던 나는 보았다.
도움반 선생님과 아들... 그리고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오신 담임 선생님~!
달려나가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이미 등교를 한 녀석이고
그 다음은 선생님과 아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엄마의 마음~!
아들은 그렇게 한참을 서럽게 울었고 두 선생님은 아들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씀하시고 계셨다. 그렇게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낡을 대로 낡은 슬리퍼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나의 눈물이 마를 날도
그만큼 멀리라. 약해지면 안되는데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복지관 치료를 마치고 집에 막 들어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아들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시다며 전화를 하신
거였다. 사실 학교를 나서서 방과후를 가고 주말농장 산책을 할 때는
아침의 그 컨디션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좀 더 좋은
컨디션으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더욱 신경 쓰겠다고...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고, 마음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현관에 놓인 낡은 슬리퍼 한 켤레를 보며 나는 혼자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어디 아이의 컨디션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도 나름의
자기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을... 그러나 가능한 아이의 맘을 읽어주고 함께
풀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또한 나의 역할이기에 자기 흥에 빠져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돌아보며 나는 또 눈물을 훔쳤다.
맨 처음, 슬리퍼를 구입하던 날, 그 슬리퍼가 닳도록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암담함에 울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순간은 참으로 감사할 순간이 아닐까? 약해진 나를 부여잡고
조금 더 힘을 내자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자고 나를 향해
다짐을 하는 순간~! 그 낡은 슬리퍼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라는 듯
슬리퍼가 자꾸 눈에 밟히는 날이다....
2009-09-29 (아들 4학년 때)
****그 슬리퍼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멀리 보냈다.
나는 더 이상 멈춰설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