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해바라기 아들과 엄마의 세상만나기
글로발(global):글로 발을 만들다
-글로 이어진 호주 여행
by
최명진
Sep 10. 2015
아래로
난 끄적이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때론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크로키 수준으로 끄적이기도 하고, 강의 내용에 대응하는 표현들을 끄적이곤 한다.
물론 반박의 의미로 기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에게 손을 들어 발표할
정도로 난 자신감도 없기에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넘기곤 한다.
이 끄적임의 시작은 아마도 초등학교 일기 쓰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학교에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하는 줄 알았고, 그렇게 이어갔다.
그 일련의 과정이 싫지 않았기에 지금껏 이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구름을 볼 수 있다니....
내가 중학교 무렵에 하루 일기를 서너 장을 쓸 정도로 몰입한 적이 있었다.
어쩜 일기라기 보다는 그냥 하루를 보내면서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팠던
마음이었고, 감수성이 넘칠 시기여서인지 나름 심도 깊은 글과 시도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특히 엄청난 사춘기를 겪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난 그때 숙제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아주 작은 일에도 부모님과의 의견차가 날 때
나는 적어도 부모가 되어서 이런 오류를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덕분에 일기를 쓰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기도 했다. 다른 일기장은 정리했지만 그때의 일기장은 아직도
간직한 채 가끔 꺼내어 보곤 한다.
인근의 놀이터에서 어우러진 아이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나의 기록이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었던 것이 중학교 때라면, 그 두 번째 목적을
가지고 나름의 글을 썼던 시기가 아들의 장애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상에 장애에 대해서, 장애 가족에 대해서, 장애인들의 노력에 대해서 알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던 때인 것 같다
. 그 글쓰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전문적이거나 깊이가 있지 않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고
글을 읽기엔 어려움이 있기에 일상생활들을 끄적이면 그곳에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겪었던 장애 관련한 정보와 편견, 인식을 접합하곤 했다.
단데농산
그러던 와중에
'글이 발을 만든다'는
실제적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냥 집안의 컴퓨터 앞에서 타닥타닥 글을 썼을 뿐인데
그 글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분의 댓글로 이어진 인연은 결국 우리를 이역의
호주란 곳까지 가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넉넉지 못한 생활에 전재산을 담았던 아파트 부도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던 내게
어디 호주란 곳이 가당키나 했겠는가. 우리나라 제주도 가는 것도 엄두도 내지 못할
그 시기에 내 인생 사상초유의 대사건이었음을 고백한다.
퍼핑빌리~~
장애가 있는 아들에 대해 불특정 다수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건
아들의
학교 입학이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 아이는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학교를
다니기엔 교육적 환경이 여의치 않았고, 그런 까닭에 아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조차
옴짝달싹 못하고 보초를 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어느 누구라도 울 아들의 이탈에
대해, 자폐성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벌어질 뻔한 일상들이 비일비재했다
.
그 와중에 월간 [좋은 생각]의 필통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내 삶을
담담하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멜번 동물원
어느 날 호주에 이민 가셨다는 분이 내 글에 관심을 보이며 댓글을 다시기 시작했고
우린 그렇게 생면부지이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좋은 인연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분을 통해 호주이민생활을 간접 경험하게 되었고, 그분은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가족의 삶과 애환을 경험하셨다.
그 와중에 연년생의 비장애 형이 동생의 치료
때문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큰 녀석의 마음의 이모가 되고 싶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발전했다.
그리고 통큰 그분은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호주행을 제안하셨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게 가능하기 나한가.
제주도는 고사하고 남들은 다 경험한다는 콘도, 펜션이란 곳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로 알고 살았던 우리였는데...
그레이트오션로드 가는 길..
내가 일을 추진했다면 이 일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일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셨고 나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방법까지 제시하시는 적극성을 보이셨다
.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은 그분의 제안을
토대로 나는 매달 조금의 돈을 여행을 목적으로 저축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4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분은 한국행을 하실 때 우리 집에서 머물러 우리 아이들과
안면을 트고 관계를 이어가셨다. 그분과의 인연은 그분의 가족과 우리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귀한 인연의 줄을 만들게 되었다. 초등 6학년 작은 녀석을 혼자
호주로 보내는 것에 대해 가장 자신감이 없었던 사람은 아들이 아닌 나였다.
아들은 간다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어려움을 표현했더니 그분이 제안하신 것이 가족여행이었다.
12사도~~
얼떨결에 아들만의 호주행은 썀쌍둥이처럼 붙어다닐 수밖에 없는 나와 장애가 있는 아들까지 확대가 되었고, 내친김에 혼자 집에 있을 남편의 휴가를 뒤로 미뤄 함께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일인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생긴 거다.
어떤 분이 자식
덕분에 비행기 타겠다고 말씀하셨을 땐 난 아들의 장애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던
시기였다.
콧방귀를 뀌면서 흘려보냈는데 그 말이 이 말이었을까 돌아보기도 했고 이젠 일화처럼 말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0여일 가까운 시기를 호주에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신 그분과 가족 덕분이었다.
일생일대의 최대의 사건이라면 바로 호주행이 아닐까 싶다. 뱁새가 황새가 잠시 되었던 시기였고 그때의 경험은 내게 지금껏 커다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보타닉 가든
난 지금도 글을 끄적이기 좋아한다. 글에 기교를 부리고픈 마음도 없다. 세상에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은 이미 너무 많다. 다만 내가 경험했던 일살의 삶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고픈 마음을 진솔함을 담아 나누고픈 마음이다. 지난 6년 여 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너무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내 이웃, 내 친척, 내 가족이 아님에도 누구보다 먼저 내 아들에 대해 지지를 해주고 응원을 해주셨던 분들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인복'이라고 말하곤 한다. 진솔한 글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경험~~!!
바로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글로발'의 힘이다. 나는 글을 썼을 뿐인데 그 글이
인터넷이란 엄청난 바다를 통해 멀고 먼 분과의 인연을 만들었으니 글이 최고의 발이
되었음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엄청난 경험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의 이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비장애아들에겐 내가 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준 것 같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아들은 지금도 그 여행사진첩을 애지중지하며 꺼내보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심 속의 원시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척박하게 살았는데 이런 경험을 하다니...
글의 힘을, 글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더욱 글의 힘에 놀랐을 뿐이다. 서툰 내 글이 이런 힘을 가질 줄 누가
알았으랴. 여전히 나는 아들의 장애로 인해 세상의 이면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글이 발을 만들었던 그 괴력을 떠올리곤 한다.
진솔함이 위력을 발휘하고, 그 진정성을 담은 글이 비행기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되었던 곳...
앞으로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 모르겠다. 그다지 우연이나 생각지 않았던
일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사는 나이다. 주어진 내 삶을 열심히 살다 보면
보너스처럼 주어진다면 고맙고, 그렇지 않다 해도 아쉬울 것도 없다.
내 인생은 있는
그대로 진솔함과 진행형으로 이어지니 그냥 돌이킬 수 없기에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할 뿐이다. 나의 글이 얼마큼 발을 만들지 모른다. 적어도 내 발자욱은 될 것이고, 조금 더 확장하면 서툰 내 글을 읽어주는 어떤 분들에게 작은 울림을 전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이 땅의 진정한 소시민에게 더 큰 것은 무리가 되어 힘들 뿐이다.
내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어느 순간에 보너스처럼 또 다른 선물이 온다면 최대한
감사하며 나누며 살고 싶을 뿐이다.
호주의 민속촌 -소번힐
그램피언~
멜번대학교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최명진
취미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포토그래퍼
해바라기를 사랑하는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의 세상 만나기
팔로워
1,060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해바라기 엄마의 소망 바구니
나는 두비(Do-Be)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