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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리 Oct 12. 2021

K를 생각한다 by 임명묵 (1)

신선함과 단순함 사이에서 

저자의 장점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활용하는 데이터와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연관성 없어 보이는 현상들을 꿰어 내는 통찰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다면 20대라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대담한 분석력도 갖췄다. (물론 경험상 나이를 먹는다고 꼭 더 대담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눈치 보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심각한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의 능력과 노고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내 생각을 덧붙여 본다. 


K방역은 권위주의 산물? 

우선 K방역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저자는 K방역이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구축되어온 병영국가 및 동원 국가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 근거로 중앙에서 지방까지 촘촘하게 뻗어 있는 행정망을 언급한다. 면은 조선 태종대, 읍과 동은 일제강점기에 그 연원을 둔다. 군사정권하에서 폐지되어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기 전까지 중앙정부의 일선 행정기구 역할에 머물렀다가, 현재는 행정기능 전달과 자치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행정시스템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후 병영국가 구축, 권위주의 독제 시스템의 실천에 적극 활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보다는 국가의 이익과 안정을 위한 많은 일들이 효율적이면서도 억압적으로 처리되어 왔음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화 및 시민사회 발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방자치 시스템도 변화와 쇄신을 거듭해 왔으며, 지역민의 수요를 반영한 행정서비스 업무를 수행해 온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효율적 방역이 일제강점기에서 기원을 둔 촘촘한 행정시스템 덕분이라는 지적은 인정하더라도 현재의 방역 성격을 권위주의로 한정 지어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특히 신속한 정보 전달과 지침의 공유가 핵심인 감염병 대응에 있어 지금의 행정시스템이 큰 도움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일상에는 군사문화나 전시 국가의 영향이 깊숙이 남아 있다. 그러한 요소를 찾아 개선해 나가는 것은 바라짐 하나 효율적 행정시스템 자체를 문제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모든 '효율적'인 것은 개인의 욕구와 자유, 상황을 고려해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 수준의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중국 VS 한국 

자연스레 저자가 K방역과 중국 방역을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K방역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과 무관하다는 저자의 시각도 문제적이다. 저자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방역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투명성과 객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물론 적극적으로 정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디지털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현상이 동일하다고 해서 두 국가의 시스템과 사회구조를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들이 경제적 타격을 비롯한 다양한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와 방역 지침을 수용했던 이유는 정부가 시민사회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물론 무조건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방역 수위를 낮추면 다 죽일 셈이냐고 비판을 하고, 높이면 경제를 죽일 셈이냐고 화를 낸다. 동선을 공개하면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날을 세우고, 공개를 안 하면 역할을 안 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비난의 목소리가 언론과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이것만 봐도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방역을 핑계로 특정 집단이 이익을 보거나 정부가 시민사회를 일방적으로 통제한다면, 그리고 상황을 축소 은폐한다면 큰 문제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코로나19 시대에 시행착오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집중해야 할 것은 누구를 위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하는가이다. 


근대국가, 정보사회와 판옵티즘

오늘날의 국가방역시스템에 '판옵티즘'적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근대국가는 바로 이런 판옵티즘적 요소의 사용과 발전을 통해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비판해야 할 것은 국가 행정 시스템과 중앙집권적 권력이 지니고 있는 감시체제가 희생시키는 사생활 및 인권,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일 것이다.  안전을 얻은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내어주고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정부(개인의 자유도 보장하며 방역을 수행하는, 셧다운 없이 방역을 하는, 경제 침체 없이 효과적으로 방역도 수행하는)를 저마다 마음에 품고 현실을 비난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아마 정부는 대응 전 과정에 대해 시민사회 및 전문가와 함께 잘잘못을 정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보 공유 및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국내 방역 정책이 사생활 침해나 '디지털 멍석말이'를 야기한 잘못된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지금의 방역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한 몇 가지 우리 사회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것은 세월호 사건 이후의 변화된 한국 사회의 맥락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과 처리는 결국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후 사회적 관심은 바로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쏠렸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은 불투명한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효율적, 적극적, 공개적 시스템에 대한 요구로 수렴되었다. 

둘째, 이러한 방역 시스템은 비단 현 정부에서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유행을 겪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실시해 왔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이전 바이러스보다 더 확산성이 크다는 점에서 강력한 방역체계가 요구되었고, 그 사이 IT기술은 더욱 발전해 현재와 같은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셋째, 다양한 바이러스 위협 속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방역은 관계 부처 공무원뿐만 아니라 의료계 및 전문가가 깊이 관여하게 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대응 방안은 단지 정치인이나 일부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제와 의료, 교육, 재정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의견차를 수렴해 가며 정책이 만들어진다. 긴 팬데믹의 터널을 거치며 초기에는 의료 전문가가, 이후에는 경제 전문가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방역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목소리의 반영의 결과물이며, 특히 코로나19처럼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공격에서는 의료 및 역학 전문가들의 의견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고려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학생, 학부모 등의 강력한 우려 속에서도 정부는 방역을 위해 오랜 기간 등교 중지 및 원격 수업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결코 아니다. 

넷째, 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한 요구는 국민들로부터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 권위적 정부 하에서 이뤄져 왔던 사건 축소 및 은폐의 경험은 방역 과정에 대한 투명성 요구로 이어졌고, 보이지 않는 고전염성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감염되었느냐에 대한 가감 없는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확진자 동선 공개가 과연 코로나19 상황에서 불필요한 것이었을까. 물론 이는 저자가 강조하는 '디지털 멍석말이'와 같은 부작용도 낳았다. 이후 지나치게 많은 안내 문자와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러한 현상도 잦아들게 되었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무증상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움 감염, 돌파 감염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초기와 같은 정보 제공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오히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정 능력과 개인정보에 대한 우려, 개선 과정 등을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민주주의 발전의 결과라고 압축해 말하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 반면, 중국인들이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일 가능성이 크다. 


'K'브랜드화의 문제점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K방역의 문제점은 방역의 효과를 브랜드화, 즉 상품화하려는데 있다고 본다. 물질적 성장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에 걸맞은 가치관과 사고를 갖추는 것이며 문화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인된 다양한 성과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서구를 상대로 느꼈던 박탈감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근거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으로 다양한 'K'를 상품화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자리했던 왜곡된 국제질서와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어떠한 행위에 'K'를 붙이고 특화해 홍보하려는 전략은 호응도 크지만 부작용도 크다. 브랜드화는 어떤 선택에 따른 영광도 갖지만 부작용과 문제점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K방역 역시 정치 영역에서 끊임없이 소비되었다. 그간 보수언론과 정치권에 의해, 자기혐오적이며 서구 중심적 가치관에 의해 우리 내부의 성공과 성취가 평가절하되거나 폄훼되어왔던 면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성공사례를 적극 알리는 과정은 필요할 수 있지만, 성급한 브랜드화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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