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뉴질랜드에서 보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뉴질랜드를 떠날 생각을 하니 언제 돌아올지,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더군요. 정신없이 사느라 미처 즐기지 못했던 아름다운 뉴질랜드를 전부 눈에 담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4주 동안 오클랜드부터 시작해 남쪽 끝까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12월의 마지막 날까지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퇴근을 하고 집 근처 순대 국밥집에서 얼큰하게 한 뚝배기씩 비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일하면서 너덜너덜 해진 아내의 청바지를 시원하게 찢어버렸습니다. 해방을 위한 의식을 치른 듯 속이 후련하더군요. 집을 청소하고 짐을 쌌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죠. 짐을 잠시 맡아주길 부탁도 할 겸 주인집 식구들과 마지막 담소도 나눴습니다.
2021년 1월 1일 새해 첫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차 앞 유리창에 펼쳐지던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했던 햇살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여행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무척 컸던 것 같습니다.
로드트립에서 가장 힘든 건 긴 운전시간이었습니다. 한 번은 구글맵으로 갈 길을 찾고 있는데 원래 이동거리보다 훨씬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루트가 뜨더라고요. 이동시간은 조금 더 길게 나왔습니다. 기름값이라도 아낄 마음으로 그 길로 가기로 했죠. 실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산길을 연신 꼬불거리며 달려야 했습니다.(풍경은 기가 막혔습니다.) 운전을 하는데도 멀미가 나더라고요. (교훈: 구글이 추천하면 믿어라)
뉴질랜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Four seasons in a day' 하루에 모든 계절의 날씨가 다 있다는 말이죠. 덥다가 춥다가 비 오다 맑다가 합니다.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재미있기도 하지만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뉴질랜드 사람들은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그냥 맞고 추우면 추운 대로 그냥 맨살을 드러내고 다닙니다. 참 불평불만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자연처럼 넉넉한 것 같습니다.
웰링턴에 머무를 때 아내의 생일을 맞았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그날만큼은 돈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걸 먹었습니다. 아내도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좋은 데이트였어요. 작은 컵케이크를 사서 불이 붙지 않은 초도 불었습니다. 작은 빈티지 숍에서 검정 반팔 티도 하나 샀습니다.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아내는 좋아합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길을 걷다가 물개도 보고 수영하면서 돌고래도 봤습니다. 뉴질랜드는 자연이 사는 곳에 인간이 잠깐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 주인인 느낌입니다.
확실히 뉴질랜드는 날씨빨이 좋습니다. 카메라를 켜고 아무 데나 찍어도 그냥 작품입니다. 맑은 공기와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너른 대지 위에서 저희 부부만 서 있었습니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 위로 빼곡하게 차있던 수많은 별들을 봤습니다. 경외심이 들기도 하고 무서운 기분도 들더군요. 저 별을 잊고 싶지 않아 숙소에 들어와서도 창문 커튼을 계속 들춰 밖을 봤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모습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별을 본다고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참 바쁘게도 사는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저만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보이는 호수마다 꼭 수영을 해보는 것이었죠.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수영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수영을 처음 배웠죠. 아직도 자유형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무 물이나 들어가서 둥둥 잘 떠 다닙니다. 수영을 배워두길 정말 잘했던 것 같습니다.
비바람이 꽤 거세게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비처럼 쏟아지더군요. 왜 옛날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었는지 알 것만도 같았습니다. 요동치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절로 겸손해지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올까요. 왜 뉴질랜드에선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우리나라에선 상식이 아닐까요. 이상하게 많은 것들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4주에 걸쳐 여행을 마치고 오클랜드로 돌아왔습니다. 아름다운 뉴질랜드를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만큼 눈에 꼭꼭 담았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원래 여행의 마지막이 되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괴로움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마치 한국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오히려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뉴질랜드 생활에 아쉬움이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오클랜드 센트럴 시티의 밤바다를 보면서 저희 부부는 뉴질랜드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요즘 뉴질랜드를 정말 잘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 부부의 육아 철학은 뉴질랜드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상식적이고 자연과 함께 하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뉴질랜드로 떠나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는데, 뜻밖에 상식을 얻어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