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제주에 온 것 자체만으로도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아내는 대도시 커리어 우먼이라는 정체성을 갖길 원했고, 이뤄냈고 그래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원했던 것들에 흥미와 매력을 잃어갔습니다. 원하지 않는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고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의 장르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프레임 안에 들어왔지만 그 프레임이 족쇄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포장하곤 합니다. 무슨 대학, 무슨 자격증, 무슨 직업, 무슨 성격, 무슨 취미 따위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자신과 타인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로 삶을 써 내려갑니다. 현대에는 타인에게 자랑할 만한 것들로 정체성을 채워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저도 그 희생자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 정체성은 한번 자리 잡으면 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먹고살려고 그래야 하기도 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서로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삶에 속도가 붙고 무거워질수록 관성의 세기는 더 세집니다. 방향 전환이 더 어려워집니다.
너무 늦기 전에 아내는 아무도 모르는 제주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마음껏 써 내려갈 수 있으니 자유로워졌다고 한 것입니다.
저도 제주도에서 편하게 목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살던 곳에선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해야 했고 삶의 경로를 바꿀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특히나 교사에서 목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라면 더 그렇습니다. 교사에서 의사가 된다고 하면 사람들을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선 그냥 하면 됩니다. 내가 뭘 하건, 뭘 했건 중요한 게 아닌 게 됩니다.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는 환경도 없으니까요. 내 이야기에 별 관심도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그냥 어디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 밖에서 마음대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그렇든, 개인의 성향 때문이든, 아니면 우리의 뇌 구조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기 때문이든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환경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환경이 많이 바뀔수록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교수도 환경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창의성과 관련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줬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제주도'는 여러모로 '저희 가족'에게는 알맞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감옥처럼 느껴지겠지요.)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조용하고, 지천에 자연이 있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 편리합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왠지 편안하고 특별합니다.
아이가 없이 저희 부부가 30대 초반에 제주도에 왔으면 아마 지금과 같은 만족감을 얻진 못했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바뀌어 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시기가 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진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생각은 계속 바뀔 것입니다. 심한 변덕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그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의 생각을 꼭 끝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지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대쪽같이 사는 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제 마음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오기 전까지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면 저희는 또 어딘가로 훌쩍 떠날 것입니다. 관성에 이끌려, 남의 시선에 파묻혀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저희'만'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재미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