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창문 밖 양배추 밭이 하얗게 덮여있더군요. 높이 솟아 있는 팜트리는 바람에 고개가 부러질 듯 휘청거리고 눈발이 수평으로 날아가는 희한한 광경을 봤습니다. 엉뚱하게도 외풍 하나 들지 않는 커다란 창을 보며 참 잘 지어진 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 단열에 더 신경 썼나 봅니다. 어쨌든 아침부터 멋진 풍경과 따뜻한 집안의 온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천연 눈썰매장이 된다는 1100도로로 무작정 나갔습니다. 아내가 블로그를 보고 찾아준 주소를 찍고 목적지로 가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 풍경은 더 하얗게 변하고 바퀴는 더 미끄러워집니다. 제주도에선 눈 오는 중산간을 가기 위해선 타이어체인이 필수라고 하는데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당장 체인을 사야겠습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것 같아 그냥 적당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놀았습니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오르막길이 눈썰매장이 되어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썰매를 탑니다. 몇 번 타다가 체인 없이 원래 목적지 쪽으로 이동하는 차를 보고 용기를 내서 저희도 더 이동했습니다. 목적지는 어승생입니다.
간만에 눈 위에서 뒹굴며 재미있게 놀았네요. 추울까 봐 옷 엄청 껴입었는데, 언덕을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하니 몸이 후끈하더군요. 아내가 준 배에 붙이는 발열패드는 자존심 때문에 끝내 거부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붙이고 왔다간 눈밭에서 배에 붙인 커다란 발열패드를 뜯는 추악한 장면을 연출할 뻔했습니다. 몇 년 전에 산 작은 썰매가 몸에 맞지 않아 속도가 잘 나진 않더군요. 아이는 그것도 빠른지 소리 지르며 브레이크 잡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좀 더 훈련시킨 다음에 커다란 썰매를 준비에서 다시 와야겠습니다. 언제쯤 다시 겨울 왕국이 될진 모르겠지만요.
7년 전 아내와 저는 신혼여행으로 일본 삿포로를 갔습니다. 1월이었고 모든 게 하얗고 고요했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한국에서, 그것도 제주도에서 아이와 함께 다시 만났습니다. 순백의 제주는 삿포로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소음마저도 폭신한 눈 위에선 힘을 잃고 주저앉는지 주변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눈이 어찌나 깨끗하고 포슬포슬하던지, 마치 청정 삼다수를 얼려 만든 빙수처럼 느껴지더군요. 입에 한 움큼 집어서 먹어봤는데, 흙맛이 났습니다. 퉤하고 뱉었습니다. 깨끗해 보인다고 먹으면 안 됩니다.
귀찮지만 아이가 만들어 달라는 눈사람까지 만들어주니 뿌듯하더군요. 아이랑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좋은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대표적인 제주도의 모습은 여름의 시원한 바다, 그리고 해가 넘어가는 아름다운 오름이었습니다. 오늘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눈이 덮인 중산간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더 깨끗해지고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지척에 있는 제주가 참 좋습니다. 저에게도,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말입니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는 제주도의 바다가 매서운 날씨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바다의 모습에 감탄하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제주도 진짜 좋지?"
"응!"
아이도 제주도를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