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대략 10년 정도 일했습니다. 솔직히 교사로 일을 시작한 계기가 그리 바람직하진 않습니다. 적당히 제 안위를 챙기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유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이유를 갖고 있겠지요.
불손한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교사를 하는 10년 동안 정말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진지하게 회의하고 일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공감하질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저에게는 한 편의 연극 같았습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생각을 하니 온전히 몰입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학교에서 더 나은 목표를 세우고 몰입하고 열심히 일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집중이 안 되니 물속을 걷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큰 저항을 느꼈습니다. 그게 스트레스가 됐겠죠.
원래 일이란 건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냥 프레임 안에 적당히 나를 맞추고, 가짜도 진짜처럼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 건가 했습니다. 물론 그게 잘 되진 않았지만요. 남들은 잘만 하는데 왜 나만 안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내는 저를 위로해 줬지만 솔직히 완전히 공감하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나름 학교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열심히 했고 좋아했으니까요. 아내는 저와 다르게 학교 일에 몰입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아내는 지금 저를 온전히 이해해 줍니다. 왜냐하면 아내도 지금은 저와 같은 상태가 됐으니까요. 학교에서 일하는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아내가 변한 것입니다. (어쩌면 학교가 더 많이 변했을 수도 있겠네요.)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한 가지 일을 은퇴할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평생직장의 틀 안에서 우리는 너무나 고통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이 변하면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직장에서도 똑같은 감정과 느낌을 얻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마땅히 할 필요가 있고요. 인간이 가진 자유로운 생각과 에너지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무시한 채 젊은 나이에 평생직장을 갖겠다고 몸부림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한 직장에서 10년 정도 일을 하면, 일의 노하우나 연봉 등이 꽤나 좋아지고 일에 만족도도 커질 테니까요. 그때쯤이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으니 그동안 이룬 것들을 쉽게 포기하진 못할 것입니다. 결국 그 상태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현실적인 즐거움을 찾으며 살길을 마련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이 정도 희생을 못할 이유는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 자신의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일이 자신과 동일시돼서 일을 그만두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강박 때문에, 평생직장이라는 사회적 강박 때문에, 기회비용이나 매몰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건 현명하지 못합니다. 수명이 길어져 질병 때문에 죽지 않는다면 과거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계획하느라 현실을 희생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구권에서는 이미 이직이나 직업의 전환이 수시로 일어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원하는 공부를 다시 하고 새로운 직장을 잡는 것도 일반적인 편입니다. 제가 살았던 뉴질랜드에서 실제로 목격한 일입니다. 물론 제도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도 잘 되어있고 문화적으로도 이런 현상을 잘 받아주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점점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하나의 직업으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변화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요.
지금 저는 교사와는 전혀 다른 일인 목수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나무를 자르고 켜고, 나사와 못을 박고, 사포질 대패질을 하고 오일을 바릅니다. 온몸은 먼지투성이가 되고 실리콘과 오일이 묻어 더러워진 옷을 입고 다닙니다. 방학도 없고 돈도 안되고 근무 시간도 더 깁니다. 그럼에도 저는 교사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건 진짜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 정신적이 저항이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제주도에 있는 작은 목공소입니다. 저는 직원도 아니고 그냥 단기 일용직일 뿐이고요. 하지만 사장님과 팀장님이 일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미래에 나는 어떻게 일을 하고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싶은지 고민해 봅니다. 가장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며 버티던 제 교사 시절과는 전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움직입니다. 분명 자신에게 '더' 맞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 많은 교사분들은 항상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젊지 않기 때문에, 여러 이유를 대며 그냥 어제와 똑같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걱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물론 현명한 사람이라면 여러 대비책을 마련하는 편이 좋겠지요.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할 테고요. 하지만 교사를 하는 분들은 이미 정말 좋은 대비책 하나는 마련한 셈입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으니까요. 교사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든 다시 기간제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실패의 공백을 메울 수 있잖아요.
어제 저희 목공소에 일을 배우고 싶다고 새로운 분이 오셨습니다. 81년 생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때문에, 안락함 때문에, 가족 때문에, 체면 때문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인스타 때문에. 수많은 의미 없는 이유 때문에 가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조금 더 용기를 내고 내 몸에 묶인 족쇄를 풀어보면 생각보다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꼭 물질적인 게 아니라도요. 오히려 물질을 덜어낼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고 살다 보면, 운이 좋으면, 물질도 따라오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