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뉴질랜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by 삽질

저는 뉴질랜드에서 사는 걸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잠시 살 계획도 있지만 평생 살아갈 자신은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 문화, 인프라, 의료, 언어처럼 제가 누리고 혜택 받을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에서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 문화에 종속되어 살기보단 내가 옳다고 생각한 가치들을 삶에 녹여낼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름의 융통성이 생긴 것이죠. 제가 뉴질랜드에서 가져온 것들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뉴질랜드 기후 특성상 불규칙한 소나기가 많이 내립니다. 쨍한 햇빛이 비치고 있어도 비가 종종 내리죠.(덕분에 무지개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그런 비를 맞고 다닙니다. 물론 비가 아주 많이 오는 경우에는 우산이나 우비를 착용하지만요. 저도 그들처럼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았어요. 비를 맞아보니 이유를 알겠더군요. 비를 맞아도 냄새가 나거나 불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연이 준 선물 같은 것이죠.


또 신기했던 건 사람들이 신발을 잘 신지 않는 것이었어요. 집에서도 자유롭게 신발을 신고 벗고 다니며 집 밖에 나올 때도 맨발로 나올 때가 많죠. 심지어 버스에 맨발로 오르는 학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뉴질랜드 사람들은 집 안팎을 잘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실내와 밖, 집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죠. 사람들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 안에서 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안팎을 명확하게 구분하잖아요. '안은 청결하고 밖은 더럽다.'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문화적, 환경적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뉴질랜드의 깨끗함을 가져올 순 없겠죠. 하지만 저는 밖이라는 공간을 더러움, 불결함이라는 생각과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청결하기 위해 유난 떨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원에 가더라도 풀밭에 편히 앉고 흙을 만지며 자연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제 아이에게도 최대한 자연의 날것을 그대로 느끼게 하고 몸이 더러워져도 그대로 놔둘 때가 많죠. 일부러 신발을 벗기고 놀게끔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에 사는 저로서는 자연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자연과 더 가까운 곳으로 사는 곳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죠.



오클랜드 대학원에 다닐 때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제 담당자가 다른 대학교의 한국인 홍보관리자를 제게 소개해 줬어요. Andrew라는 분으로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시다 뉴질랜드로 이민해서 정착한 분이셨어요. 성공한 이민자셨고 정말 배울 게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뉴질랜드의 계층은 항아리 모양에 가깝다고 하시더군요. 대부분 비슷한 생활 수준으로 살아간다는 말씀이셨어요. 그리고 소득과 상관없이 삶의 형태도 비슷했고요.


제가 경험한 것도 비슷했습니다. 소득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수수했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두드러지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죠. 특히나 옷차림이 그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안한 옷을 입었어요. 나름의 패션이 있지만 뭔지 모를 촌스러움과 친근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서 살 때 가장 편했던 점이 외모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었어요. 어떤 옷을 입던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시선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뉴질랜드 사회에서 저만 좋은 옷을 걸치고 있으면 왠지 우스꽝스러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뉴질랜드에서 눈에 띄게 깨끗하고 예쁜 옷을 걸친 사람은 대부분 동양인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남을 다시 의식하게 되더군요. 제 겉모습이 제 신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차려입지 않으면 뭔가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직장에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순 없지만 외모나 패션에 힘을 빼고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정말 필요한 옷만 사고 돈도 아낄 수 있게 됐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진정한 '시선의 자유'를 얻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뉴질랜드에서 황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저희 부부는 캠핑을 갔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크리스마스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맛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계획했죠. 그런데 크리스마스 당일에 문을 연 식당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집에 와서 주인집 아주머니가 주신 크리스마스 파티 음식을 얻어먹었어요. 우리나라에선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대목에 문을 닫다니요.


뉴질랜드 사람들은 가족 중심적이고 삶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크리스마스가 식당을 닫은 이유는 가게 주인들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던 것입니다. 카페 같은 경우도 오전 일찍 문을 열고 대부분 늦은 점심쯤 되면 문을 닫아요.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늦게까지 식당을 하거나 오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민자들 '덕'분에 그들의 삶은 균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뉴질랜드 사람들이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죠.


교사를 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요즘 정말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교사만큼 한국 사회에서 눈치 안 보고 육아시간을 쓰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교사로 지내다 보면 뉴질랜드 사람들 부럽지 않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느껴요. 오히려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죠. 교사하는 동안 이런 특권을 많이 누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가족과 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요.



뉴질랜드에선 상대적으로 직업에 대한 편견이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면에서 좋은 대우를 받죠.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 이런 노동자인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픽업하러 오셨어요. 형광색 조끼, 페인트 뭍은 워커를 그대로 신고 센터로 들어오시더군요. 우리나라였다면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거나 하셨을 텐데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요.


저도 처음에 뉴질랜드에 갔을 때 목수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결국엔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편견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이유가 컸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기간제를 하면서 직업에 대한 편견을 더 많이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배운 내용을 한국에 와서 심화시켰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제가 정교사로 복귀했다면 이런 편견을 영영 버리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도전을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죠. 제가 새로운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지닐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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