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으로 짬뽕을 먹었습니다. 진짬뽕 두 개에 토핑으로 청경채, 알배추, 콩나물 그리고 제철 대하까지 추가했습니다. 정신 줄 놓고 먹고 있는데 아내가 맛있냐고 묻습니다. 제가 쩝쩝벌레가 될 때마다 아내가 하는 잔소리입니다. 제정신이 아닐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나는 소리가 있습니다. 겨우 남은 국물에 야무지게 밥까지 말아 먹었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습니다. 밤새 선잠을 자고 일어나니 배가 사르르 아픕니다. 혼자 화장실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나오니 창백한 제 얼굴을 보고 아내가 말합니다. "오빠 배 진짜 너무 한거 아니야? 그깟 라면이 뭐라고..." 아내는 저를 위로해 줍니다. 산짐승도 소화시키는 코모도의 위장을 가진 아내는 제가 불쌍한가 봅니다. 밤사이 그녀의 몸은 짬뽕 국물 한 방울까지 말끔하게 흡수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20대 중반, 한 달 동안 인도 여행을 하면서 제 소화기관은 망가졌습니다. 현지인처럼 길거리 음식을 게걸스럽게(아주 맛있게) 해치우고 다니다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조드푸르에 있는 유명한 길거리 토스트 집에서 치즈 오믈렛 토스트 2개를 연달아 먹고 설사병이 시작됐습니다. 도마 대신 손바닥에서 쪽파를 썰어 손맛을 추가하던 비법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남은 여행 기간 동안 길거리 음식을 향한 식탐을 잃고 현지인들을 빼닮은 앙상한 몰골만 얻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난생처음 위장,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결과는 '이상 없음' 이었습니다.
의사의 진단과 상관없이 제 몸은 분명히 '이상 있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잦은 복통과 화장실 이슈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신경이 예민할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증상이 심할수록 신경은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나중에서야 장 건강은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대부분이 장에서 분비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우울과 날카로움 사이에서 춤추듯 살았던 지난날을 납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건강하지 않을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고 비난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하찮은 몸뚱어리를 그대로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엔 내 몸에 맞춰서 살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제 몸에 맞는 음식과 섭취방법을 찾아가며 식단을 조절했습니다. 꾸준하게 운동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정상 범주에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던가요. 여전히 치킨과 짜장면 그리고 짬뽕에 무릎을 꿇곤 합니다. 코모도의 위장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아내는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저를 보며 부러워하곤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질투를 보면서 누구나 각자만의 크고 작은 위장장애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우리는 모두 남들은 알아채기 어려운 숙제를 풀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삶이 던져주는 무작위적인 숙제 앞에서 한낱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습니다. 거부하며 짜증 내고 화내던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빨리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 현명할 것입니다. 괴로워한다고 달라지는 건 구겨진 인상뿐일 테니까요. 전자를 택했던 저는 참 미련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는 건 아닙니다. 거칠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생물은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점과 단점은 뜻밖의 장점으로 완성되기도 합니다. 지나치지 않은 고통은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망가진 제 위장 '덕'분에 저는 더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인생은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미묘한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각자의 위장장애는 비난하고 피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기꺼이 반겨야 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론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제 발로 나설 필요도 있고요. 이상하게 요즘 손맛이 듬뿍 담긴 조드푸르 토스트 맛이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