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한 지도 이제 반년 정도 됐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글쓰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됐습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음을 흔드는 불안함도, 머릿속에 얽힌 불편한 생각도 글을 쓰면 네모 반듯하게 정돈됩니다. 글을 읽는다는 건 테트리스 블록의 모양을 생각하지 않고 쌓는 것과 비슷합니다. 반면에 글을 쓴다는 건 블록의 모양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귀를 맞추는 작업입니다. 글을 써야만 그다음이 더 명확해집니다. 글을 쓰면 생각과 감정이 굴곡 없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아내와 나눴던 대화의 파편들도 글을 쓰면서 명확한 모양새를 갖춥니다. 그 느낌이 참 좋습니다.
올해 여름 김민섭 작가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 마지막 질의응답시간에 한 여성분이 "책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작가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쓸 내용(경험)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글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예상과는 다르게 글을 잘 쓰는 사람 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책을 완성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했습니다. 결국 생각, 경험, 느낌이 글쓰기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공감했습니다. 저 또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했으니까요. 그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꾸밈없이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 진심이 담긴 글에 많은 공감과 칭찬, 그리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제 '이야기'였다는 걸 어렴풋이 경험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글을 멋지게 쓰고 싶은 욕심입니다. 그런 욕심이 올라오면 제 글은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가곤 합니다. 힘이 들어간 글은 가짜 느낌이 많이 납니다. 알맹이는 없고 필요 없는 표현과 기교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지우곤 합니다. 글 쓰는 과정은 명상과 비슷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내 몸에 힘이 들어갔는지, 내면의 진심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남을 속이려는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자랑을 하고 우월함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이 산으로 갈 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제 마음과 생각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써야 할 내용이 보이곤 합니다. 다시 진심이 담깁니다.
브런치에도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똑같이 올리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작가분들이 다양한 주제의 글을 올립니다. 그 수많은 글 속에서 표류하는 제 글이 마치 군중 속의 웅얼거림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에 쓸려가는 소음처럼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운이 좋게 포털사이트 다음 메인에 걸려서 조회수가 폭발하고 있는 걸 보면서 황당하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글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내 글이 빛을 볼 수는 있을지, 내가 그만큼 경쟁력을 갖췄는지 의문이 듭니다. 근데,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지금은 글 쓰는 게 좋으니 남 눈치 안 보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배설하고) 싶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낭비한 내 인생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꿈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언젠간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 같은 걸 써 보고 싶습니다. 글을 읽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비범함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작가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감정과 생각을 낚아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맛을 섬세하게 분리해낼 수 있는 절대미각을 지닌 사람처럼 말입니다. 최근에 봤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가볍게 볼 수 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요. 꼭 이뤄야만 하는 목표가 아니라 언젠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편안하게 도전해 볼까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이는 건 제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산책처럼 편안하게 걸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결국엔 다 때가 오기 마련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