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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Mar 04. 2016

늦겨울, 밤.

모처럼 종이책을  쌓아두었다

  꾸준히 글을 쓰길 그만둔지가 얼마나 되었지?

티스토리 블로그의 마지막 포스팅도 까마득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간혹 블로그에 어떤 생각들을 길게 써놓았었다. 그 짧은 글들이 바로 다음날에만 읽어도 부족하고 치기 어리게 느껴졌고, 그래서 산발적으로 쓴 글자의 나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잊히는 SNS만 선호하게 되었다. 대학 과제가 아니고서야 긴 글은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 이제 무엇에 관해서든 내 생각과 감상을 길게 늘어놓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이제 조금 지난 것 같은데, 이십 대가 절반쯔음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나는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편할 수 있었던 위치를 버리고 제 몸에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던 청년의 늙은 여동생이 화면에 나왔다. 그의 젊은 오빠가 죽은 나이가  스물둘이라고 그랬다. 오랜만에 대형 포털에 그의 이름이 보이는 게 반가워 클릭했다가 잠깐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스물 몇이라는 나이에 자기 자신 외에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림을 내놓고 출판 서적을 내놓고 하는 이들도 있겠고 자기 손으로 노동해 무언가 만들어내는 이들도 많겠지만, 학교 나와 평범하게 대학교를 전전하는 나와 내 또래들에게 아직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뿐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타내는  건 항상  나뿐인데, 이룬 것 하나, 깊은 사고 하나 내보일 것 없는 얕은 나 자신은 해를 갈수록 스스로에게 가장 부끄러운 무엇이다. 나는 내 손으로 한번 노동해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손가락 끝은 말랑말랑하고 하루 열 시간씩 꼬박 공부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굳은살이라고는 오른손 중지 손가락 한구석의 필기구를 진  흔적뿐인 게으른 손. 운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크게 돈 걱정을 해본 일도, 공부에 한이 맺힌 적도 없이 게으르게 산 몸이다. 이 나이쯤에는 무언가 달성한 게 있어야 했을 텐데, 눈에 보이는 것 없어도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맴돈다. 언제 부터였지?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나를 떠올려보면 그 희멀건하고 확실한 것 하나 없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렇지만 먼 미래의 희멀건한, 이상적인 내가 내놓는 뚜렷한 것은 항상 말과 글이다. 복잡한 이론들을 명료하게 이해해 상황에 적용해 연결 짓는 나, 울프나 보부아르가 한 말들을 세련되게 인용해 누군가에게 그들을 읽고 싶게 만드는 나. 그런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뱉어낼 수 없겠지. 내일 읽고 지워버리고 싶거나 지워버릴 글이어도 오늘 밤에는 써 내려간 글이 그렇게 하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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