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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Dec 03.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 20 -

빅 리틀 라이즈 2

*스포일러 주의


  어떻게 이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을까. 그들은 너무나 리얼하다. 여자들은 기민하고 주변 상황을 습관처럼 살핀다. 그것을 소문을 좋아하고 타인을 질투하며 여자끼리는 서로 적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진실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항상 스윗하거나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그들은 때로 실수를 하고 때로는 흥분해 못되게 굴고 때로는 한심하게 굴고 질투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여성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어떤 여자들을 미워했다. 어떤 여자들을 질투했다. 그건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일 때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이유일 때도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들을 연민했다. 몹시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잊어버릴 수 없었던 건 그들의 상처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면 나의 상처도 영영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상처 때문에 누군가 도와주기를 절실히 바라니까 그들의 상처 또한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괴롭고 힘들고 용기를 요하는 일이라 나는 오랫동안 그 일을 미뤄왔다.

  용기를 낸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무엇보다도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질 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인 여자를 봤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간의 스트레스와 어쩌면 비난과 몰려오는 트라우마를 이겨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밀하고 치밀하게 계산해도 뭐라도 시작하지 않는 한 계산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일을 꺼내들고 오래 전 스쳐지나간 사람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했다.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쿠션을 여러 겹 쌓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람은 내가 누군가에게 맞고 있을 때 무작정 달려와 가해자를 계단으로 밀어버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단 하나 아는 것은 그도 나도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리라는 것이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가 내가 아는 부당함을 아리라는 건 안다. 아니,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내가 어떤 도움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빅 리틀 라이즈> 첫번째 시즌을 보면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덥썩 좋아하기 힘들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결국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했고, 그들 간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연출은 디테일까지도 적나라했다. 현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것들이지만 막상 연출하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장면들이 가득했다. 제인이 레니타를 찾아가기 위해서 내는 용기나 보니가 정신 없는 파티장에서 기민하게 상황을 관찰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현실에서 나와 주변 여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이기도 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길거리 커플을 보면 잠깐 멈춰서서 지켜보는 것과 같은 일부터, 오해와 이간질로 멀어진 상대에게 다가가 솔직하게 잘못을 사과하고 대화를 청하는 것까지.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는 우리는 항상 상냥하거나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야, 사람이니까.

  극 내내 드라마는 주요 인물들의 주변인들이 그들에 대해 찧어대는 말들을 산발적으로 보여준다. 음습한 가십이나 흉보기 같은 말들. 우리가 몹시 두려워하여 하려던 일을 멈추게 하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결국에 듣고야 마는 식의 말들이다. 그런 많은 말들이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덧붙여지는 사족들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건에 관련된 이들이 이 여자들이라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지만, 보라. 그 주변에 얼마나 한심하고 짜증나는 남자와 남편들이 많았는지. 그러나 터무니없는 흉보기의 대상들은 결국 '그녀'들이다. 드라마는 그런 말들로 둘러쌓인 그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켜내고야 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되지 않는 이야기. 어떻게 이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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