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글의 상관관계
텍스트 창작으로 밥벌이를 결심하고, 궤도에 (어느 정도는) 오른지가 얼마인데 아직도 내게 글쓰기는 조금, 주술적인 영역에 있는가보다. 일년 반 전에 나는 우연하고도 재미있는 기회를 얻어 무려 정규직에 취업을 했다. 지금 직장에는 굉장히 감사해야 한다. 심신의 건강이 한국이 뭐야, 프랑스같은 노동권 강국에서도 "흠 이건 좀 심한데" 할 만큼 저질의 근태를 찍을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안 잘리고 있으니까... 이래놓고 다음 주에 잘리는 것 아니겠지? 살려주세요 대표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니라 저의 건강이
여튼 글쓰기와 주술의 문제가 무엇인고하면 구한 일자리 역시 텍스트 창작과 연관이 있었을 뿐더러 계약한 몇 가지 원고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족과는 가끔 만나야만 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박박 우겨 본가에서 가까운 자리에 집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아주 무리한 자취 시작이었다. 월 수입에 비해 턱없이 비싼 월세집을 선택한 이유는 공간 분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서 작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집에서 일년 하고 3개월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된 글이라고는 단 10매도 쓰지 못했다. 쓰여지지도 않았고 쓰고 싶은 마음도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동종 업계에 한없이 가까운 유사 업무로 9to6 5/7 근무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트레스든 내면의 응어리든 발산하기 위해서, 정리하고 나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글을 조금이라도 써야하는 사람이다. 그 집에서는 글이 쓰여지지 않았다.
이사를 한 이유는 그 더럽게 비싼 월세 때문이 컸다. 그런데 이사 내내 '부질없이 오만 것들을 다 이고 지고 살고 있었구나 이게 다 집착인 것을...' 을 오억 번쯤 염불을 외고 있을 때였다. 짐 정리 비슷한 것이 다 채 이루어지지도 않고 작업 환경은 무슨 잠잘 환경도 다 꾸려지지 않았을 때 랩탑과 연결할 디스플레이를 놓을 벽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갑자기 느낌이 왔다. 아, 이 집에서 나는 글을 쓸 수 있겠구나. 그리고 글을 쓰고 싶었다.
일년 가까이 원고를 제대로 만지지 못하면서 내가 만들어둔 인물들과 그 세계와 한없이 유리되고 있었다. 정규직 직장이라는 것은 숭고한 것이지만 그때 쓸 수 있었던 이야기를 포기한 대가로는 부족했다. 그 이야기는 나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타자와 세계를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기 위한 것 말이다. 물론 다시 그 원고를 쓰기 위해서는 단순히 오, 여기선 글을 쓸 수 있겠다. 라는 느낌만으로는 부족하다. 첫 자취로 얻은 집에서 나는 adhd의 과소비와 정신병의 온갖 부작용을 겪어가며 체중 증가와 빚을 얻었고 회사에 면구스러워하며 무릎으로 기어 들어가야 하는 주제파악을 앞두고 있다.
다시 원고에 조금씩이나마 집중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집중하고 몰입을 해야 하며 그에 앞서 미친 작가새끼 때문에 어이없어하고 계실 담당자님들께 눈물의 사죄문을 보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일년 좀 넘는 기간 동안 그냥 쓸 수 없었다. 왜지? 그 집이 문제였다면 밖에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좀 복잡한 게 내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살게 되었는데 통근 시간까지 합해 하루 절반 가까이를 비워놓는 주제에 밖에 나가 글을 쓰겠다고 또 혼자두기가 미안했고 고양이는 어렸으며.... 여튼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고 그 비싼 월세를 내고 지내는 집에서 글을 썼어야 맞지 않아?????? 결국 못썼지만. 작업 환경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구한 집에서 짐을 푸르면서 불현듯 여기선 글을 쓸 수 있겠다, 고 깨닫고는 갑자기 이렇게 조잘대는 글을 쓰고 있다니, 글쓰기는 내게 여전히 주술적인 행위가 맞는 것 같다.
또 이렇게 누구도 그다지 공감하지도 흥미로워하지도 않을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글을 써놓고 나면 그 다음에서야 '글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떠오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짜 글쓰기란 뭘까 그리고 글쓰기와 공간은 대체 뭘까? 버지니아 울프여 답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