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규제는 통화다”

디지털 달러를 쫓는 자들

by LUY 루이

미국 워싱턴, 재무부 본관 지하 회의실.
방음 처리된 회의실 안에선 공조기의 저음만이 흐르고 있었다.
UST 붕괴 72시간 후, 스테이블코인 관련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우리가 이걸 단순한 디지털 자산으로 볼지, 실제 통화로 인정할지가 문제입니다.”

회의를 연 SEC 국장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달러를 흉내 내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달러를 대체하려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영역이에요.”

연준(Fed) 통화정책 담당 부의장이 조용히 반박했다.


“대체라기보다 보완입니다. 현금 보유 비율을 1:1로 맞추고, 매일 실시간 공시를 의무화하면—”
SEC 국장이 말을 끊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결국 은행보다 신뢰받게 되면요? 달러 유통 속도는 민간이 결정하게 될 겁니다.”

재무부 차관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건 규제가 아니라, 통화정책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금융 상품이 아니라 달러의 확장판이에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면, 달러 체제 전체가 위태로워집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국무부에서 파견된 국제금융 고문이 그 침묵을 깼다.

“신흥국에서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달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현지 은행계좌 없이도 미국 달러에 접근할 수 있죠.

이건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입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CBDC, 중앙은행 디지털 달러를 공식 발표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연준 부의장에게 쏠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짧게 말했다.


“그렇다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나는 뉴욕의 사무실에서 이 회의 내용을 보고 있었다.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때렸다.

규제는 곧 통화다.

누가 법을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돈을 찍느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뜻이었다.


다음 화 예고 – 5화. “검은 돈, 하얀 코인”

스테이블코인이 자금세탁과 제재 회피의 도구가 되는 현장. 합법과 불법이 한 송금 네트워크 안에서 뒤섞이는 순간.
이전 03화3화. “UST 붕괴, 거대한 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