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공시의 아침

천하제일단타대회

by LUY 루이

공시는 새벽에 올라왔다. 시장이 완전히 깨어나기 직전, 어둠이 가장 연한 시간이었다.

나는 모니터 불빛을 낮추고, 호가창의 빈 칸을 바라봤다. 아직 숫자는 없다.
숫자가 없을 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망설임의 그림자, 군중의 발소리,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일들이다.

한강증권에서 보낸 메일의 제목은 간결했다.

<천하제일단타대회 – 초대합니다〉

웃지 않았다. 초대란 말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이번엔 그 대가가 명확했다. 손실.

규정 PDF를 열었다.
기본증거금 5천만 원. 일일 최대손실률(MDD) -6% 도달 시 자동 탈락.
수익률이 아니라 ‘점수’로 순위가 매겨진다.
속도를 낼수록 점수는 얇아지고, 얇을수록 위험해진다.
시장에선 언제나, 빨리 번 돈보다 지켜낸 돈이 더 오래 산다.


나는 낡은 노트를 펼쳤다. 커피 얼룩이 번진 페이지에 예전의 내가 적어둔 문장이 있었다.
“테이프는 항상 먼저 안다. 다만 대부분은 나중에만 믿는다.”
그 문장을 믿다 잃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다시 그 문장을 읽고 있었다.
패배의 기록 속에서만 사람은 다시 배운다.



대회장은 한강증권 본사 지하의 심장부에 있었다.
트레이딩 전광장.
사방을 감싸는 스크린, 400대의 맞춤형 단말기, 각자의 체결음이 미묘하게 다른 리듬으로 섞여 있었다.
자리표를 찾아 앉는 동안, 사람들의 눈빛이 교차했다.
누군가는 경쟁자를 탐색했고, 누군가는 이미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먼저 죽는 건 언제나 마음이다.


심판석의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일일 최대낙폭 -6% 도달 시 탈락입니다. 선물과 옵션 거래는 가능하되, 과도한 레버리지는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성공은 빠를수록 좋지만, 서두른 성공은 점수가 낮습니다.”
몇몇이 비웃었다.
점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얼굴. 하지만 나는 그 표정을 많이 봐왔다.
대부분은 다음 장면에서 사라진다.


왼편 세 번째 줄, 곽도영이 있었다.
굵은 목, 두꺼운 손가락, 클릭할 때마다 일정한 박자가 들렸다.
모멘텀 맹장. 불꽃을 보면 들어가는 사람.

그 반대편엔 장만호가 있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마우스가 멈춘 채, 제한가 근처에만 커서를 가져다 놓았다.
그건 ‘벽을 부술 때만 칼을 빼겠다’는 신호였다.


뉴스 섹션 쪽엔 윤보현이 있었다.
휴대폰 두 대를 켜놓고 속보 채널을 번갈아가며 새로고침했다.
눈을 완전히 감지 않는다. 깜빡임조차 수익의 적이라고 믿는 눈빛이었다.


조용한 구석엔 마석준이 있었다.
캔들은 흐릿하고, 숫자는 선명했다.
회귀선, 체결강도, 오차율. 그는 시세가 아니라 확률의 편차를 본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호가창의 침묵의 테이프가 귓가에 울렸다.
시초가 경매가 시작되면, 입찰자는 용감하고 취소자는 현명하다.
그리고 둘 다 살아남지 못한다.


“시초가전, 9시 정각부터 10분. 그 안에서 첫 점수를 산출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10분.
시장에게 10분은 영겁이고, 인간에게는 함정이다.


나는 단축키를 점검했다.
매수·매도, 분할, 전량, 즉시취소.
손끝이 오래된 악기처럼 건반 위를 튕겼다.
손은 기억한다.
잃었던 날의 떨림, 이겼던 날의 무관심.

무관심은 시장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다.
냄새를 맡는 순간, 시장은 사람을 집어삼킨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바닥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호가창이 첫 숨을 쉬었다.


곽도영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시초가 위로 쏠리는 호가에 매수 주문을 던지며 호흡을 짧게 끊었다.
전광판의 그래프가 튀었다.
나는 따라붙지 않았다.
호가창 상단의 얕은 물량이 반복해서 채워졌다 비는 걸 봤다.
가짜벽.
가짜벽은 춤을 추지만, 진짜벽은 움직이지 않는다.


윤보현의 종목이 뉴스 상단에 떴다.
“임상 2상 결과, 유의성 확보.”
제목은 길지만 돈은 짧다.
제목이 길면, 돈은 이미 지나갔다.


2분 뒤, 첫 점수표가 전광판에 떴다.
상위 20명은 익명 처리.
그중 #31의 곡선이 유난히 매끄러웠다.
체결 수는 적었지만, 슬리피지가 없었다.
0.29초, 0.31초, 0.30초.
호흡이 일정했다.
너무 일정해서 기계 같았고, 너무 불규칙해서 인간 같았다.
경계 위의 리듬.


이건 누군가의 서명이다.


나는 잔량의 절반을 정리하고, 나머지를 브레이크이븐 위로 올렸다.
이 라운드에서 이기는 법은 벌기보다 지키기다.
지키는 손이 점수를 만든다.


9분 30초.
시초가 고점이 한 번 더 두드려졌다.
곽도영의 그래프가 번쩍 올라갔다가 꺾였다.
장만호가 제한가 바로 밑에서 대량 흡수 체결을 일으킨 것이다.
시장 전체의 기류가 반전됐다.
나는 반동에서 1틱을 건졌다.
1틱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종료 30초 전, 전광판 상단에 #11이 급상승했다.
체결 로그에 0.03초 간격의 불빛이 연속으로 찍혔다.
지나치게 가벼웠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겼다.
유인일 수도 있었다.
정확히 0.03초 뒤, 반대편에서 역방향 체결이 겹쳤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다.


나는 모니터 밝기를 한 칸 낮췄다.
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전광판의 시간이 00:02에서 멈칫했다.
둘이 스쳤다, 라고 테이프가 속삭였다.


호각이 울렸다.
사람들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누군가는 입꼬리를 올렸고, 누군가는 손등을 문질렀다.
나는 노트에 짧게 적었다.
“0.03초. 서명.”


테이프 노트

테이프는 거짓말을 모른다.
다만, 진실을 감추는 법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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