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ere Jul 02. 2024

논리

배신

애당초 믿음이 없다면 배신도 없다는 문구를 분석해 보자면, 그렇다면 배신의 논리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배신감은 드나 배신이 아니라면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믿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不信)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믿지 않아야만 배신이 성립되지 아니한다.


배신감의 배신은 그럼 불신도 아니고 믿음도 아닌 애매모호한 중립의 감정인가이기도 싶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배신해도 그다지 미워하지도 않고 신뢰해도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 무감정의 의식의 흐름인지 모르겠지만 단지 불신하지도 않지만 신뢰하지도 않다면 배신감은 왜 드나 말이다.


논리의 비약에서 빠져나와 골몰해 보면 이도저도 아닌 감정으로 위안 삼아 굴곡의 모순을 회피하거나 피해보자는 파장의 흐름은 의욕마저 상실하게 한다. 배신이란 감정이 무서운 것은 소소한 의욕과 희망을 말살시키는 것이다. 극복의 방향은 단절이나 복수의 투쟁심인데 이 또한 애당초의 불신과 믿음에 배반된다.


그런 논리라면 냉담하지 않았을 것이고 공감하면서 포용당했을 것인데 기질과 성향이 그렇지 않다면 그 또한 하나마나한 말뿐이다. 그렇다면 부정한다고 배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 참으로 고민스럽다. 다 너를 위해서 엄마가 이런다고 토닥거리는 학부모의 무모한 말을 믿을 학생은 없기에 고통은 지속적이고 계속적이다.


감정이 논리대로 움직인다면 정리가 될 것이다. 정리가 안되니까 감정인데 내버려 두자면 압박 속에서 상대의 양심만 목 빼고 기다리는 멍청한 기대에 사로잡혀 착각 속에 허우적거리면 배신감만 더 키울 뿐이다. 애당초 신뢰가 없었다면 철저히 혼자였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이 감정의 논리장난에 빠져든 것이다. 배신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단지 지속될 뿐이다. 삶은 그러한 운명 속에 내버려져 있을 뿐이기에 더 이상의 진실은 알려고 하지 마라. 가르쳐 준다 해도 부정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배신의 골을 끊어 내는 것이다.


논리대로 판단하고 전개되는 현실과 사실 그리고 진실에 무관심해져라. 그것이 불신도 신뢰도 배반도 아닌 그러한 비논리적 감정이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질 운명이니 말이다. 자식 잘되라고 윽박지르는 부모이면서 그런 부모가 안되길 바라는 모순이 논리대로 보면 배신 아니겠나!


배신은 분노나 체념, 포기의 실체가 아닌 분노케 하여 체념해서 포기하게 만드는 폐허 그뿐이다.


-2024년 7월 봄을 누르고 돌아서는 여름에 쓰다.

작가의 이전글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