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궁지에 몰린 환경을 탓하지 말고 역사의 누가 되는 만행 또한 순리대로 가만히 있어야 할 경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자꾸 해보라는 궁여지책에서 나오는 무리수를 두어 행하는 것들은 역사를 퇴보하게 하며, 그로 인해 무엇인가 해야 할 용기로 맞서야 할 상황을 초래한다.
24년 겨울 군인들이 서울에 진입하는 그러나 군인들이 힘을 쓰지 않고 소극적인 행위 덕분에 그래도 다행스럽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군인들이 오판하고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힘을 쓰면 결국 비극은 재창출된다.
과거 근대화 속에서 어떻게 쉬는가를 망각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는 무참히도 처절하게 죄악시되어 민주화로 이어진 역사를 볼 때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역사는 자연스럽게 더 발전하였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해보기나 했어'라는 유명한 기업가의 말이 있다. 진정 불굴의 투지로서 무엇인가 해야 할 용기가 모든 분야에서 왜곡되어 스며든 만연한 '슈드비 콤플렉스'는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젊은 세대의 헬조선에 이어 다시 긍정적인 국가관에 혼비 되어 다이내믹한 한국의 역동성을 다시 찾아가는 중인 듯하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퇴보하지 않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순환한다. 'Should Be' 강박이 정신건강의 주범이라는 진부한 스토리를 펼치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경우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가 역사의 새로운 전환으로 수용될 수도 있어야 한다.
노동과 일 그리고 가치 있는 휴식, 여기에 못지않게 그냥 내버려 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또한 비난받을 사안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완전하고 무해한 미덕이라는 인식수용이 선행되었다면 21세기 도심에 군인이 출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가 포기이고 체념이라는 그 고리타분하고 지긋한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어야 정신건강의 주범 '슈드비 콤플렉스'는 사라질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않을 줄 아는, 주변의 강박과 유혹에도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며,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균형과 조화의 질서는 타인의 겁박에도 변덕스럽지 않은 지조 있는 자신과의 신뢰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을 해야 할 시기에 적절하게 한다면 많은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무사히 안 하고 평화롭게 지나가지만, 무엇을 안 해야 할 시기에 억지로 한다면 많은 사람이 안 해도 될 일을 해야만 다시 평화로움을 회복할 수밖에 없다.
이제 지금부터 이 땅은 뭐라도 좀 해보라는 것 즉 '무엇을 해야만 할 용기'를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줄 아는 용기부터 수용하는 미덕 또한 가르치는 땅이 되길 바라며, 그 미덕은 주목받지 않는 온전히 당연한 평화로움이었으면 한다.
의식에 흐름대로 이러진 글에 마침표를 찍자면, 아무렇지도 않은 작고 사소한 변덕의 반복이 눈덩이처럼 불어 결국 모두를 부정하는 큰 거짓말의 씨앗이 되고 그 거짓은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는 예측가능한 약속이고 신뢰이기 때문이다.
- 2024년 12월 04일 서울도심 공수부대가 철수하는 새벽을 보내며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