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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다

너나 잘하세요

by movere

'아버지는 이 세상에 속고, 이 도시에 속고, 직장에서 속았다고 했다.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속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중에서, 박영란)


신념은 감옥 안의 죄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감옥밖의 자유조차는 될 수 없는 것일까? 몰랐을 때는 몰라도 알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을 때, 이토록 지겨운 세상은 속은 놈의 몫이다.


정작 해야 할 말의 상대는 말을 하라고 재촉하는 장본인 그 속인 놈들인데 그들은 감옥밖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는 듯한데 속은 놈만 이 웃기는 이 엉터리 같은 세상을 짊어진다.


속은 놈이 묻는다. 속인 놈들에게 너네들도 속았냐고? 그러면 속인 놈들이 속인 대상은 속은 놈이 아니고 속인 놈들 그 자체이다. 그 길을 끝내거나 새로 시작하거나 간에 시작은 결국 끝이 있어야 한다.


속이고 속는 관계가 주고받는 관계로 동기화될 순 없다. 이제 등 돌리는 시간만 남을 뿐이다. 감히 신의 영역에 하찮은 인간이 침범하니 이런저런 죽음으로 대신되는데 속인 놈들은 아직도 그 불행을 우연이라 치부하고 깨닫지 못한다.


본디 그 무거운 죽음은 그렇게 가볍게 저 멀리 관계되지 아니한 먼 곳부터 시작된다. 이선균도 결국 죽었다. 그는 속은 죄로 죽었다. 그는 끝을 선택했는 것일까? 아니면 시작을 선택한 것일까? 결국 속은 것이 죄다.


속은 사람이 깨달은 것은 어쩌면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가 아니고 결국은 되돌아갈 수 없다고 자신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고. 속은 것이 죄라면 그저 항변 하나 한 후 자신이나 세상에 등 돌리는 것이라고.


'너나 잘하세요'라고.


'그때 나는 엄마도 아버지처럼 속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속았다'는 말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도 몰랐다'


-2025년 설연휴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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