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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타인의 집

by movere

'아 참,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이 방에서 사시던 세입자 말이죠. 이사 갔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실은, 자살했습니다' (타인의 집, 손원평 소설 중에서)


희진, 재화, 재욱(쾌조) 기존의 세입자들 사이에서 세입자의 세입자가 된 시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손원평 단편 '타인의 집'이란 책은 흥미롭다. 자주 언급되는 계약이란 단어와 이 책에서 반복되게 인용된 '자본주의(capitalism)'는 마치 영화 '기생충'과 일맥상통하는 논리 아마 그게 소설의 핵심인 듯하다.


미사여구로 설명할 필요 없이 거두절미하고 그 논리가 바로 지배적 구조로 합법적인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그나마 집이란 곳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단순한 관계에 혼잡하고 복잡한 계약이 따른다는 것은 그 집이 타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계약은 비단 부동산만 아니라 고용등 모든 관계에 확장되어 존재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계약직 등등 구분하는 명칭일 뿐, 간접고용이나 프리랜서 같은 업종은 타인의 집안에 세입자의 세입자와 동일한 관계일 뿐이다. 그런 세입자끼리 모여 살다 보니 비공식적 계약이 생성된다. 피지배계층은 둥지 안에 서열을 매기고 구분하고 개별화한다


고용 또한 타인의 집에서는 먼저 들어온 세입자가 우선 서열이다. 조직이든 친분이든 가족 같은~ 뭐든 아니든 간에 집주인은 세입자 눈에 안 보이게 존재한다. 자신의 집이 아닌 이상 타인의 집에서 지배받는 그런 관계에서는 질서 문화가 형성되고 오늘은 이쪽 편, 내일은 저쪽 편, 모레는 내편 등 임시적 계약적 끼리끼리가 형성될 것이다.


타인의 집에서는 세대, 이념. 성별, 종교, 정의 등등 갈등은 세입자들 간 또는 세입자의 세입자들 간 표면적 갈등일 뿐 근원적 요소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그곳이 타인의 집이란 것! 지배자와 지배받는 자들의 귀속에 근거한 가지지 못한 자들 간 서로 치고받는 다툼일 뿐이라는 것!


격하게 투쟁도 하고, 억울해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하고, 주의(主義)라는 신념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이 모두 타인의 집에서 거주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또 다른 냉소를 파생하고 동시에 벽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협정과 계약 다시 말해 법을 만들어 낸다.


재물적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친분적 사람의 주관적 관계도 법으로 재단하거나 보호한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상캐스터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언론사가 좋아하는 주의(主義), 즉 사내 민주주의는 형성되기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사건의 발단과 귀결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스스로가 아닌 수만수천 타인의 집으로부터 이슈화되어 그나마 거론되는 현실을 보니, 결국 국가라는 타인의 집에서 자본주의의 법치에 따른

가진 자의 지배를 받고 그 안에서 세입자끼리 지배하는 그 이념이자 '주의(主義)' 속성은,


싸우지 않고도, 저절로 스스로 잘, 기가 막히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돌아가는 그 시스템을 보니 '타인의 집' 내부의 언론은 세입자들을 지적하고 계몽하고 가리키기만 할 뿐 집주인과의 지배관계는 거스러지 못하는 나약한 도덕군자로 몰락하는 이미지만 증명한 꼴이다.


헌법에 나오는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극소수의 주인인 그 '주의(主義)'의 시스템 안에 '타인의 집' 대다수의 세입자들은 각자의 '주의(主義)'라는 보증금을 몸안 깊숙이 간직한 채 오늘도 불안하게 살고 죽는다.


결국 언론도 대중도 추위와 눈비를 겨우 피할 수 있는 '타인의 집'에서 오늘을 사는 세입자들일뿐 서로가 살기 위해 계약서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하지만 영원히 '자신의 집'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세입자들은 또 다른 타인의 집으로 옮기기 위해 추운 오늘만 버티는 그런 슬픈 공동체 일뿐이다.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경쟁, 말하자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일 따위는 우리와 하등 상관이 없는 세계의 것이었다'


- 2025년 1월 눈비 한파 날씨 속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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