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다
평일 하루 연차를 내고 쉬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고 쉴 때 못 쉬어서 쉬었는데 오랜만에 만족감이 차오른다. 하릴없이 무료하고 막막한 하루가 싫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편안함을 보장받는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도 있듯 사람은 각자 각양각색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할 의무감이 있듯 나 또한 남들의 훈계나 충고 같은 구석기 사고방식에 압밥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쉬는 것도 하루이틀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마찬가지로 일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맨날 같은 사람 같은 잔소리에 어디 가도 있는 빌런들!
나의 정서에도 외로움이 크게 작용하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근데 우선순위 맨 위에 편안함이 지배하고 있어 무료함, 고립감, 외로움 같은 부정적 단어보다 편안함이란 긍정적 정서가 다른 부정적 정서를 압도한다. 그래서 혼자서도 그다지 외롭다는 정서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편이다.
혼자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 차원은 두 가지다. 돈을 만끽하는 방법과 돈을 아껴야 하는 방법 이 두 가지다. 전자는 돈이 많은 경우니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근데 결핍에 찌들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지질하게 사는 인종들, 그런 구질한 부류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으니 제외하기로 한다.
평균수명이 쉴 새 없이 치고 올라가는데 정년은 한정되어 있으니 정년연장에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벌이가 있다가 없어지고 남은 수명동안 고독과 고립, 무료함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이 들어도 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적극 권장되어야 하지만 질 좋은 일자리가 많진 않다.
정년 이후의 노동은 정규직처럼 연속적이지 않고 쉬는 틈이 많을 수 있다. 정년 후를 대비하기 위해 자기 계발, 자격증 같은 준비를 하는데 이게 모두 일 할 준비다. 연속적이지 않는 고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쉴 준비도 잘해야 하는데 쉬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대부분 혼동한다.
즉 현재 벌이가 있을수록 혼자 버릇하는 익숙함에 단련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은 혼자다. 혼자에 매몰되라는 말이 아니고 단련해서 면역을 키우라는 뜻이다. 현재는 과거와 달라서 비용을 아끼면서도 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 외면하고 도외시하니 모른다.
혼자 버릇 안 해서 찾아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돈을 아끼면서 무료함을 충만감으로 전환할 훈련 또한 자격증이나 어학 못지않은 자기 계발의 범주다. 취미, 운동. 등산 등등 같이 하거나 혼자 할 수 있는 실질적 행위뿐만 아니라 혼자를 즐겁게 만끽할 마인드 훈련을 조금씩 단련해야 한다.
나는 혼자 있기 좋아하는 부류지만 텔레비전이 싫다. 차라리 독서가 좋다. 우리나라처럼 도서관과 문화센터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의 복지가 세계최고이다. 무료교육, 강연, 박물관, 미술관 지식등 퇴직 후에 바로 즐길 수 있는 심미안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한다.
늘그막 하게 사람들 하고 여행도 가고 어울려야 한다는 말들이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그 늘그막의 많은 시간에 어울리는 시간은 혼자 지내야 할 시간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벌이가 없음 모임도 줄게 마련이다. 정년이 100세까지 늘어날 리도 없고 또 그렇게 일하지도 못한다.
결국은 혼자 잘 지내는 면역을 돈 있을 때 키워야 된다. 쉼의 힘을 키워야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디지털에 익숙해놓으니 포인트로 영화 보고 쿠폰으로 커피 마시고 혼자 행복해질 수 있는 쉼의 힘은 일할 때 말고 오로지 온전하게 쉴 때 키울 수 있다. 일하는 것 못지않게 쉼은 그래서 중요하다.
잘 쉬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한다. 돈에 노예가 되어 쉬라고해도 잘 안 쉬려고 하는 인간들은 일도 건성건성 게으르게 한다. 반면 쉬고 싶어도 못 쉬는 일 잘러들에게는 쉼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 쉼 속에는 미래의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하라는 쉼의 고귀한 뜻을 전달받는 일 또한 쉼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과 쉼은 상호보완적 동등한 개념이다.
-2025년, 7월 어느 바쁜 쉼의 날에 쓰다.